2024-04-23 20:50 (화)
인간차별
인간차별
  • 김혜란
  • 승인 2017.11.08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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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창원터널 사고는 거의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말하기도 끔찍한 대형참사가 지난해에 이어 또 발생했다. 태풍 ‘차바’ 때는 근처의 절개지가 무너져 내려서 차량운행이 전면 통제됐던 기억도 생생하다. 장유의 인구가 14만 명 규모로 커지면서 하루 10만여 대의 차량이 창원과 장유를 거쳐 가거나 오가고 있다. 터널 자체가 통행량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가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이런 사고가 무서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인명피해 때문이다. 이번 창원터널 참사는 사망자 3명과 크고 작은 부상자 5명을 낳았다. 사고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해서 화주 측과 운전기사가 뚜껑이 없는 적재함에 기름통을 싣고도 고정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음산 터널을 뚫어야 한다거나 도로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사망한 화물차 운전기사는 화물운송종사 자격증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76살의 고령에 건강상태도 나빠서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크고 잦은 사고를 계속 내고 있었다고 한다. 제기되고 있는 모든 원인이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급한 문제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고현장에 빠져나온 지인은 그날 일을 눈앞에서 보듯이 전했다. 모든 일이 30초 안에 일어났다고 했다. 제일 앞에서 SUV 차량을 운전하던 지인은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차를 덮치는 시커먼 기름과 기름을 따라 일어나는 시뻘건 불길을 보고는 핸들을 꺾어 왼쪽으로 빠져 시동을 끈 후 탈출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지인에게 불길 반대 방향으로 뛰라는 목소리가 있어서 신도 놓친 채로 움직였고, 살아남았다. 넋을 놓고 서 있으니 맨발을 보고 누군가가 신을 건넸고, 또 친절한 누군가는 불이 타오르는 차 속에 있는 가방과 핸드폰을 가져다줬다고 한다.

 지인은 아직 몸이나 마음이 긴장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덜한데, 혼자 있으면 자꾸 차를 덮던 검은 기름과 시뻘겋게 타오르던 불길이 생각난다고 했다.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받아야 할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 외 잊을 수 없는 불편한 기억 하나를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 중에 이주민으로 파키스탄인(?)이 있었는데, 그 역시 신발도 놓치고, 가방이나 지갑 역시 챙기지 못한 채 맨몸으로 차에서 뛰쳐나와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한국말도 잘했고 의식도 있었으며, 지인처럼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망연자실해지고 있었는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지인에게 가진 관심이나 호의를 그 외국인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이 굉장히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채 벗어버리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인간차별이나 목숨경시 풍조가 발현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같은 사고를 당해 비슷한 피해를 입고 유사한 모습으로 사고현장에 있는 피해자인데, 누구에게는 과잉친절(?)을 보이고, 또 누구에게는 투명인간 보듯 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대체 어떤 가치관에서 가능한 일인지, 내내 고민도 되고 짐작되는 원인 때문에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과잉친절까지 바라지는 않겠지만, 타국에 와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망연자실한 외국인에게, 오히려 더 살뜰한 챙김과 위로의 행동을 건넸어야 옳다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과장되게 측은지심을 보이는 일도 딱히 적절하지는 않지만, 같은 사고당한 그 외국인을 외면한 행동들은 뭔가 자존심을 긁는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구태의연한 국가 이미지를 굳이 끌고 오지 않더라도, 생각과 행동이 적절한 우리 모습이 아니라, 조악하고 천한 우리 자신의 또 다른 민낯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지극정성으로 대접하고 보낸 미국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 외국인이 과연 트럼프 대통령 같은 백인이었다면 어땠을지, 우리 안의 또 다른 나에게 질문을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사고현장에서의 인간차별은 결국 생명경시와 마찬가지이고, 사람 아닌 경제나 인종의 잣대를 우위에 두는 대한민국 천민 자본주의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창원터널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비단 교통 관련 문제나 계산기를 두드릴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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