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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疏文(상소문)
上疏文(상소문)
  • 송종복
  • 승인 2017.11.01 1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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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上:상-위 疏:소-통하다 文:문-글

 임금이 신하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길을 트여주는 것으로 <동문선>에는 이를 상서(上書)ㆍ서(書)ㆍ진서(陳書)ㆍ계서(戒書)ㆍ청소(請疏)ㆍ청장(請狀)ㆍ청서(請書) 등으로 사용했다.

  상소문은 임금과 신하 사이의 막힌 언로(言路)를 소통하는 것이다.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국왕이 백성을 통치하게 된다. 이에 계급사회가 생기고 상하계층이 생긴다. 최고기관에는 황제가 있고 그 밑에 제후와 재상 그리고 신하가 있다. 이때 상하가 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길은 상소문이다. 따라서 상부에 대한 보고와 시정을 바라는 문서이므로 어떻든 상관의 마음에 들게 문장을 써야 한다. 여기에 미사여구(美辭麗句)가 따른다.

 중국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 요(堯) 임금은 사악(四岳)의 제후에게 소통을 구했고, 순(舜) 임금은 8명의 제후에게 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같이 중국 고대 제후는 천자에게 정치 상황을 보고하는데 처음 상소문을 썼다. 이때 천자에게 올리는 문장이니만큼 품격과 형식을 갖춰야 했다. 조선시대는 주로 간관(諫官)이 임금에게 정사를 간하기 위해 올린 글을 상소(上疏)라 하고, 의견서나 품의서는 상주(上奏)라 했다.

 상소문은 임금과 소통하는 문장으로서 상대를 감동시켜야 되므로 미사여구를 많이 이용했다. 상소문 중에는 중국 이사의 <축객서>, 제갈량의 <출사표> 등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들로 돼 있다. 이는 왕에 대한 설득과 마음의 감동을 줘야 하기 때문에 분명하고 명쾌하며, 성실하고 간절하며, 사리에 적절하고 대구를 많이 써야 되기 때문에 일종의 문예 종합예술이었다.

 조광조의 상소문을 보면 ‘도끼에 맞아 죽더라도 바르게 간하고 가마솥에 삶겨서 죽더라도 옳은 말을 다하면 이 사람이 바로 충신이다’고 했다. 또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도끼를 매고, 멍석을 짊어지고, 죽음을 각오하는 상소를 올려 충정을 표출했다. 이로써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왕도를 펼치며, 의로운 길을 열며, 이욕이 근원을 막는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궁궐 앞에 이마를 찧어가며 상소를 올리고, 소통이 막히면 목숨을 걸었다. 관가에서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고 고혈을 짜는 탐관오리들을 쫓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상소를 올려 민생을 돌봤다. 이같이 조선시대 상소문은 시퍼런 칼날보다 더 무서운 실탄이었다.

 상소문에는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신이 선비의 지조요, 절개라 했다. 요즘은 어떤가. 지난해는 문고리 3인방이니 불통의 대통령이니 하며 근 3개월이나 촛불이 날치더니 결국은 탄핵 정권이 되지 않았던가. 앞으로 관리들은 옛 선비들의 상소문을 되새겨 민의 상달하는 선비정신을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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