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7:24 (토)
김장김치
김장김치
  • 정창훈 부사장
  • 승인 2017.10.30 1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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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부사장

 김장을 담그는 연례행사는 계절이 있지만 김장을 담그는 재료가 일 년 내내 생산되고 김치의 저장도 점점 더 과학화돼 이젠 언제라도 필요할 때 김장을 담글 수 있다. 이제 김치는 연중 맛있게 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고 우리의 식문화가 됐다.

 김치를 담그는 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이다. 김치는 음식 분야의 불고기, 비빔밥과 한글, 아리랑, 태극기, 휴대폰 등과 함께 한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범위한 도시화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90% 이상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아 주는 김치를 먹는다. 이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가족 협력 및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임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것, 특히 공동 작업인 김장은 한국인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일이다. 김치류는 3천년 전부터 중국에서 ‘저(菹)’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우리나라에는 삼국 시대에 전래돼 통일신라시대, 고려 시대를 거치는 동안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료와 한국인의 기호에 맞도록 종류와 제조 방법이 변천돼 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치류는 무를 주원료로 한 동치미, 짠지, 장아찌가 주를 이뤘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통배추와 고춧가루를 주원료로 한 김치류는 조선 시대 중반 이후에 결구 배추와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보급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치라는 말의 유래도 눈길을 끈다.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림으로써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만들어낸 것에서 김치의 이름은 시작했는데, 고려 시대 초기에는 물에 담근다는 뜻의 ‘지’에서 후기에 ‘저’로 변경됐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침채’가 ‘팀채’가 되고 이것이 ‘딤채’가 됐다. 이후 ‘딤채’가 구개음화 돼 ‘김채’로, 이는 다시 구개음화의 역 현상으로 오늘날의 ‘김치’로 정착됐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음식 중에서도 김치의 효능은 정말 탁월하다. 김치의 원료들은 채소, 마늘, 고춧가루, 생강, 젓갈 등인데, 이들은 우리 신체 내에서 대장암 예방, 위암 예방, 소화 작용과 혈액순환 보조, 단백질 보충 등의 활약을 한다. 개별 능력도 탁월하지만 이들 재료가 함께 어우러져 숙성이 되면 유산균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체내에서 유해균 번식을 억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그러니 질 좋고 숙성이 잘 된 김치만 잘 섭취해도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효과가 있게 된다.

 김치에 담긴 발효과학은 더욱 놀랍다. 고추,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과 재료가 소금 때문에 열려 있는 배추의 섬유질 구멍으로 들어가 엄청난 양의 유산균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아미노산과 젖산이 생기고 김치의 독특한 발효 맛이 나게 된다. 그리고 유산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미량 발생하고 이게 물에 녹으면 탄산이 돼 김치에 시원한 맛이 나게 한다.

 다른 나라에도 김치와 비슷하다고 하는 음식은 있다. 중국 사천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중국의 3대 채소라고 불리는 겨자과의 ‘착채’로 만든 ‘짜사이’가 있다. 소금에 절인 착채를 가늘게 썰어 물에 헹군 뒤, 잘게 썬 대파나 양파, 설탕, 식초, 고추기름, 참기름 등의 양념을 섞어 버무려 먹는다.

 채소를 소금이나 된장 등에 절인 일본 음식인 쓰케모노(漬物), 매실을 시소 잎으로 물들인 다음 소금에 절인 우메보시(梅干)나 소금에 절인 무를 쌀겨에 묻혀 발효시킨 단무지인 다꾸앙(澤庵)이 대표적이다.

 피클(pickle)은 육식을 즐겨 먹는 서양인들에게 빠질 수 없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피클은 ‘소금물에 절이다’라는 뜻의 네덜란드어인 페클(pekel)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소금에 절인 음식이라는 점에서 김치와 유사하나 젓갈이나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식초를 넣어서 만든다는 점에서 김치와는 다르다.

 여전히 늦가을이나 초겨울이면 각 가정에서 김장을 담근다. 김장을 담그는 날에는 이웃사촌이나 친척들이 모여들어 함께 담근다. 이날은 작은 잔칫날이다. 힘이 들긴 하지만 여럿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김치통에 김치들이 척척 들어간다. 김치를 다 담그고 나면 막 담은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밥 위에 얹어 먹는데,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는데 김치를 좋아한다고 하니 지인이 선물로 김장김치를 보냈다. 덕분에 나도 먹을 수 있었다. 정성이 듬뿍 담긴 맛있는 김장김치의 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에게도 김장하는 날은 있었다. 고춧가루마저 넉넉하지 않아 제대로 넣지 않은 싱거운 김장김치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겨우내 소중한 반양식이었다.

 김치는 계층과 지역적 차이를 떠나 한국인의 식사에 필수적이다. 밥과 김치는 가장 소박한 끼니이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연회에서도 김치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이다.

 김장김치 담그는 음식문화는 자연을 정복하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을 몸소 배우면서 대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는 한국인의 창조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가장 우수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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