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6:27 (화)
  • 승인 2017.10.1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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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몸부림에서 현의 몸짓으로` 선율을 뽑아내다

백현경 바이올리니스트

음악ㆍ육아는 삶의 두마리 토끼

6명 자녀가 주는 기쁨 ‘무한’

아이 ‘떼창’은 행복한 천둥소리

“자녀 통해 나 자신 많이 배워”

연주ㆍ몸 하나 돼 감동 전달

 ‘삶이 주는 의미를 깊이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몸짓으로 선율을 전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 씨(38)는 바이올린 4줄을 켜 격정적인 화음과 부드러운 하모니를 길어 내지만, 그 바닥에는 또 다른 6줄로 연주하는 삶의 악기가 있다. 바로 자녀 6명이 주는 힘이다. 진리(1999년), 한리(2006년), 원리(2008년), 훈리(2010년), 태리(2012년) 마지막으로 준리(2017년). 고3 아이에서 8개월 아이까지, 이들이 가정에서 엮어내는 생명의 환희를 백씨는 단 일분일초도 놓치기 싫어한다.

 그 다산의 행복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올 초 여섯째를 낳을 땐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몸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밀려왔지요.” 그는 여섯째까지 낳으면서 유산의 아픔도 겪었다. 올해 초 출산 회복이 더뎌 무대에 서는 게 힘들지 않을까 라는 걱정까지 했다. 몸무게가 20㎏까지 늘었다. 예전 몸을 만들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그는 무대에 서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외모’에 미운 모습이 붙을까 은근히 마음을 졸였다. “늘 마음에 무대를 그리기 때문에 몸을 아끼지요. 몸을 알아간다는 것은 바로 나를 알아가는 것이 됩니다. 몸을 잘 알면 연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출산한 후 한 달도 안 돼 다시 무대에 섰다. 백씨의 연주는 한마디로 ‘삶의 몸부림을 현의 몸짓’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악기는 몸의 일부로서 가장 이상적인 소리를 낸다. 지난해에 낸 첫 앨범 타이틀은 ‘화산(火山)’이다. ‘화산’은 그가 즐겨 쓰는 예명이다. 수록된 10곡을 들으면 현(string)과 몸짓(moving)이 하나가 돼 화산처럼 거대한 힘을 뿜어내고 잦아지기를 반복한다. 격정적인 힘과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선율을 타고 흐른다. 그가 연주하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몸짓을 보면서 많은 관객이 감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백씨는 지난 8월 ‘3인3색 콘서트’를 하면서 5개 도시를 순회 연주했다. 그는 자신의 연주 만족도를 가장 먼저 안다. 무대에서 온전히 몰입하면 자신과 악기가 함께 춤춘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다. 이번 연주에서 만족도를 최고치로 올렸다. 삶의 깊이에서 뿜어낸 연주였기 때문이다. 그는 연주 후 무대 표정과 제스처를 모니터링 받는다. 그는 3인3색 콘서트에서 아무런 군더더기 없는 몸짓을 보였다는 말을 들었다.

 백씨는 요즘 무대에 서면 연주 몰입도와 감정 절제가 더 나아졌다는 걸 안다. 가장 큰 이유는 여섯째 아이가 삶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간 모유수유 등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한다. ‘또 한 번 더’라는 말은 무엇보다 삶을 강하게 붙잡는 신호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수고를 삶의 땅을 쟁기질하는 몸짓으로 받아들이는 그에게 육아는 수고에 앞선 기쁨이다.

 백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무대에 선다. 요즘은 무대를 선별해서 대략 한 주 한 차례 원칙을 지킨다. 그에게 삶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고리다. 두 고리가 상호보완을 하기 때문에 삶과 음악은 자연스럽게 상승작용을 한다.

 백씨의 삶에서 숫자 ‘6’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들딸이 가정을 꽉 채우기 때문이 그에게 ‘6’은 완전수다. 그는 “아이들이 되레 나를 키워요!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데 아이들이 선생이 되고 나를 더 나은 음악세계로 이끄는 목자(牧者)다”고 말한다. 큰 두 바퀴가 조화롭게 돌아가면 그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을 자주 되뇐다.

 어린 아이 3명이 한 번씩 들려주는 ‘떼창’은 행복한 천둥소리다. “우는 소리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는 아이가 울 때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엄마를 원하는 하모니를 오래 듣고 싶은 까닭이다. 아이들끼리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 백씨는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특히 딸인 둘째 한리가 늦은 밤에 우는 동생을 다독이는 모습에서 천사를 만난다. “한리야, 동생이 울 때 엄마를 왜 깨우니 않았니?” “엄마가 아기 보기 힘들어하시니까 그랬죠.” 초등학교 6학년 누나가 동생을 달래 엄마 옆에 살짝 누이는 장면은 행복지수 100도라 할 수 있다.

 그는 5살 때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따라 바이올린 활을 잡았다. 그 후 몇 년간 쉼표를 찍고 중학생이 돼 바이올린과 뜨거운 호흡을 같이 했다. 고등학생 때는 오직 바이올린 연습에만 몰입했다. 도시락을 싸다니며 10대 후반기에 바이올린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연습을 하다 교복을 입은 채 잠이 들기도 했다. 바이올린과 한 몸을 이루며 선율을 마음에 새기는 험난한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7년간 스위스 유학생활에서 바이올린과 진한 교감을 나눴다.

 백씨는 “자신의 음악은 시작도 못했다”고 겸손의 손을 내젓지만 내년 2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큰 기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40살을 기점으로 또 다른 음악 세계로 연주를 떠납니다. 개인적으로 향후 40년을 한 묶음으로 해서 큰 발걸음을 내딛는 거지요.” 그는 2집 앨범에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속해 60분간 연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혼자 무대와 연출을 다 맡은 즉흥연주를 하는 셈이다.

 그는 인생을 더 큰 설렘으로 40대를 맞이하려고 서둔다.

 “집에서 아이들 돌보거나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켤 때 ‘난 무얼 갖고 태어났을까’라고 물을 때가 있어요. 이 질문을 해놓고 ‘한 꼭지를 찾아 가고 싶다’는 바람을 달지요.” 그에게 육아와 연주는 삶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다. 두 축이 아름답게 엮이면서 삶에서 ‘화산’이 된다. 화산에서 뿜어낼 한 꼭지는 두 삶을 아우르는 최고의 콘서트가 될 것을 확신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그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싶어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은?

ㆍ2001년 국립 부산대학교 음악학과 실기 수석 졸업

ㆍ스위스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 (학비와 생활비 어학연수 장학금)

ㆍ2004~2007년 스위스 바젤 국립음악대학 (Basel Musikhochschule) 연주학(Konzert Diplom mit Auszeichung) 석사, 교육학(논문: 윤이상 바이올린 음악에 대한 고찰), 즉흥연주학(Freie Improvisation) 석사 과정 실기 만점 졸업

ㆍ부산대학교 오케스트라 및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악장 역임

ㆍBasel Sinfonietta 단원 역임

ㆍ2005년 창원시립, 부산시립, 진주챔버, 러시아 Habarobsky, 서울내셔널심포니, 아모르 필 등과 협연 및 전국 순회 독주회 연주

ㆍ2013년 서울시 주최 장터 서울광장 공연, 함양산삼축제, 합천대장경세계대축전, 산청세계한의약엑스포. 10월 북경 한중문화예술제 초청연주, 11월 독주회 시리즈 1 ‘그리움&소망’, 12월 아이온 앙상블 도민예술단 선정 “삶 그리고 아리랑” 창작 공연, 스위스 5개 도시 초청 독주회

ㆍ2014년 4월 네팔 카트만두 초청 연주, 6월 MBC 경남 ‘피플인조명’ 방송 출연, 8월 경남도 해외문화예술교류사업 선정 ‘아리랑 인 스위스’ 해외공연, 9월 SBS 생방송 투데이 방영, 7ㆍ9ㆍ11ㆍ12월 국회의장 공관 만찬 초청 연주, 12월 대한상공회의소 송년 모임 초청 연주

ㆍ2015년 지역사회공헌 대상 수상(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상), 4월 미국 워싱턴 한미문화예술재단 초청 공연, 제41회 보성다향대축제 개막퍼포먼스 기획 및 연주, 호주 시드니 ‘한ㆍ호 정경 포럼’, 제14회 세계한상대회 초청 공연, 한국재능기부협회 재능 나눔 인증상

ㆍ2016년 대한민국교육공헌대상 문화예술 부분 특별상 수상

ㆍ2016년 7월 솔로 앨범 ‘현의 몸짓’ 발매, 9~10월 서울, 광주, 부산, 창원 발매기념 투어 콘서트

ㆍ2017년 8월 3인 3색 콘서트 5개 도시 순회연주

>> 부산교육대학 실기겸임 교수, 국립창원대학 외래교수 역임

현 Aion Art Performance 아이온 예술공연 대표 겸 예술감독

류한열 기자

1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 씨는 “무대에서 온전히 몰입하면 몸과 악기가 하나라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2 백현경 씨와 다섯 아이의 행복한 미소.

3 다섯째 태리와 여섯째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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