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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날 유감
노인의 날 유감
  • 이광수
  • 승인 2017.10.15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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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지난 2일은 ‘제21회 노인의 날’이었다. 요즘 상술에 편승해 1년 내내 하도 기념할 날이 많아서 ‘노인의 날’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노인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시키고 노인공경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1997년 법정 기념일이 됐다. 그러나 유엔이 정한 ‘세계노인의 날’은 10월 1일이다. 199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제45차 유엔총회에서 10월 1일을 ‘세계노인의 날’로 결의하고 1991년 10월 1일 전 세계 유엔사무소에서 ‘제1회 세계노인의 날’ 행사를 거행한 것이 시초다. 우리나라는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어서 하루 뒤인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정해 6년 뒤인 1997년부터 법정 기념일이 됐다. 노인의 날 기념행사는 지난 1999년까지는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했으나 2000년부터는 정부 행사의 민간이양방침에 따라 대한노인회 주관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노인의 날은 비록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국가가 정한 기념일인데도 별 볼 일 없는 형식적인 기념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올해는 긴 추석 연휴 속에 묻혀 노인의 날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사회관계망에 들어가 보니 ‘제21회 노인의 날’을 다룬 언론사는 단 한 곳밖에 없었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1개 보수 야당 외엔 언급조차 없이 무관심했다. 이것만 봐도 한국이 얼마나 노인을 홀대하는 나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보수의 절대적 지지계층인 노인 인구가 750만 명을 넘어섰다. 9년 뒤엔 노인 인구 1천만 시대를 맞는다. 바야흐로 노인세대가 정치 권력의 향배를 좌우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실버세대의 막강파워를 실감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전속도는 세계 최고이다. 이웃 나라 일본이 고령사회가 되는 데 38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겨우 30년이 걸렸다. 서구의 경우 80~10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초고속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오는 2050년이 되면 한국의 노인 인구비율은 전체인구의 36%인 2천만 명으로 일본의 40%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이라고 미국 통계국이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사회문제시 되는 독거노인의 수가 지난 2000년에 54만 명(전체 노인의 16%), 2012년 119만 명(20.2%), 오는 2035년에는 343만 명으로 노인 인구 1천475만 명의 23.3%를 차지할 것이라고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독거노인의 증가로 인해 노인 고독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뒷모습인 해외 고려장(부모를 해외에 버리고 오는 패륜 행위)의 성행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노인 고독사에 대한 속 시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봉양을 꺼리고 정부는 늘어나는 복지재정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욱이 세계최저수준의 합계 출산율(1.17명)로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로 인해 국가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좌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노인 문제다. 이에는 정부의 노인 정책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노인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는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만큼 대접받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투정만 부릴 때가 아니다. 존경받는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분노에 앞서 그런 결과를 자초한 노인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각성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노인의 의무’라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 내용의 핵심은 ‘노인으로서 잘난 척하지 않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였다. 세상과 자식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거두고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남은 인생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득한 소중한 경험들을 이 사회와 젊은이들을 위해 나눠주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늙어서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꼰대가 아니라 비록 몸은 늙어 오래된 기계처럼 낡았지만,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 보석처럼 빛나는 노년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존경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노인의 날’이 ‘국민축제의 장’이 되는 그 날을 위해 노인 스스로 낡은 사고와 고정관념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누릴 자유와 권리에는 항상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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