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8:56 (금)
호모 루덴스의 축제
호모 루덴스의 축제
  • 정창훈 부사장
  • 승인 2017.10.12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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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부사장

 계절이 주는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마음과 산야를 화려한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면서 전국 방방곡곡은 축제와 잔치로 취해있다. 도시의 공원과 광장, 운동장과 대학의 캠퍼스는 물론이고 산과 들, 강과 바닷가에서도 가을을 쉽게 보내주려고 하지 않는다. 겨울과 봄 그리고 긴 여름을 잘 견디고 보낸 전사들을 위한 멋진 축제들이 넘치고 있다.

 아주 작은 마을잔치까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제법 규모를 갖춘 축제가 전국에 1천여 개 이상이라니 신명 나는 세상이다. 특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면서도 축제의 계절이다.

 봄 축제가 생각난다. ‘캠퍼스의 낭만’ 대학축제는 주로 5월에 열린다. 필자는 말이 대학생이지 주간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 대학을 다녔으므로 캠퍼스의 낭만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을 따로 먹을 시간이 없었다. 회사 통근버스에서 김밥이나 빵으로 저녁을 해결하면서 학교 정문에 내리기가 무섭게 강의실로 뛰어가야 간신히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축제가 열리는 한 주간은 휴강이라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대학생이 돼 축제에 참가해서 주간 학생들이 마음껏 즐기는 낭만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고 싶어 축제의 현장을 누볐다. 역시 공부보다는 노는 것이 좋았다. 흐드러지게 핀 캠퍼스 벚꽃은 가로등 불이나 조명 빛에 비쳐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불빛 아래서 풍성한 막걸리와 파전은 환상의 궁합이었다. 아직도 봄이 되면 벚나무 사이로 울려 퍼졌던 청춘 음악이 귓전에 맴돌고 있다.

 축제는 인간의 유희적 본성을 충족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놀이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축제는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 등의 욕구를 충족할 뿐만 아니라 평소에 느꼈던 긴장이나 불안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일소에 해소시킴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을 더욱 높이는 놀이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놀이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축제와 잔치가 없는 사회는 생명력을 잃은 사회나 다름없다. 네덜란드 인류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했다. ‘놀이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모든 문화는 ‘놀이’로부터 기원했다는 이론이다. 동물과 달리 놀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창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의식이나 철학, 예술은 물론 심지어 전쟁까지도 놀이와 연관해서 봤다. ‘놀이하는 인간’은 기존의 이성적 합리주의에서 나온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nes)나 인간의 본질을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할 줄 아는 점에서 ‘만드는 인간’인 호모 파베르(Homo Faber)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지친 한국인에게도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길 줄 아는 유전자가 살아 있다. 한국인들은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보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되길 열망한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그런데 올해 유달리 긴 추석 연휴 동안 공무원이나 정규직 직장인들은 ‘호모 루덴스’가 되겠지만 하청 근로자, 중소 영세 상공인, 자영업자들은 물론이고 취업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호모 파베르’로 엇갈릴 수 있다. 110만 명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까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때 누군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불공평한 세상의 한 단면도 있다.

 우리에게 놀이는 보통 비생산적인 것, 시간 낭비에 해당하는 행위로 생각된다.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 사회에서는 생산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놀이는 이를 높이기 위한 필요한 ‘휴식’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뤘을 때 놀이는 이제 삶의 질을 측정해주는 요소로 생각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선 무작정 앞만 보고 살기보단 이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새로운 덕목으로 만드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의 대부분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자유와 상상, 맹목적인 노력, 긴장 등의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하위징아가 얘기하는 놀이와도 유사하다.

 이 시간에도 전국 어디에선가 축제와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을 만나고, 무슨 음식을 먹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매년 기다림으로 가슴 설레며 가보고 싶은 축제, 지역의 전통, 역사, 문화와 향기가 흠뻑 젖어 있는 축제, 지역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함께할 수 있는 축제, 함께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풍성해지는 감흥을 받는 축제가 그립다. 공동체의 동질성과 결속을 다지는 독창적 가치를 담고 있는 축제를 만나고 싶다.

 힘들고 엄중한 시기일수록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반에 둔 ‘호모 루덴스’ 적 특징이 합리적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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