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카를벤츠가 잠든 사이 벤츠부인(Benz)은 두 아들 유겐, 리하르트와 함께 세 모자는 자동차를 조심스레 끌어내어, 106㎞나 떨어진 ‘포츠하임’까지 운행했다. 남편 카를벤츠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자동차를 발명한 뒤 특허까지 따고도 2년 반 동안 시운전만 계속하자 부인이 직접 모험에 나선 것이다. 가는 도중 휘발유와 냉각수가 떨어지고 체인과 브레이크용 가죽도 끊어졌으며 먼지 탓에 노즐까지 막혔다. 개울물, 망치, 헤어핀, 스타킹 등을 동원한 응급처치 덕분에 차는 굴러갈 수 있었다.
<나비부인>은 1895년 청일전쟁 중에 일본의 나가사키 항구에 살았다. ‘쵸쵸상(나비)’이 15세 때 집안이 몰락해 기생이 됐다. 그때 나가사키 항에 들른 미국해군 장교 핑커톤과 결혼해 ‘나비부인’이라 했다. 얼마 후 핑커톤은 본국으로 돌아간 후 3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이때 돈 많은 일본인과 재혼을 권유하지만, 나비부인은 핑커톤을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배가 항구에 정박하고 남편이 내릴 때, 바로 나가지 않고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이 ‘나비’라고 부를 것이라고 기다림을 약속하는 기생과 미 해군 장교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빗돼 <나비부인>이라 불렸다.
<자유부인>은 1954년 정비석(鄭飛石)의 장편 소설 제목이다. 주인공 오선영은 가정주부이고, 남편은 대학교수다. 그는 재벌부인들 모임인 ‘화교회’에 참석했다. 주위의 재벌부인에 비교하니 자신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는 양품점 파리양행(巴里洋行)에 취직하게 된다. 이로써 바깥세계를 알게 되고, 또한 사교춤도 알게 됐다. 이후 생활의지를 잃고 패가망신하는 직전에 남편의 아량과 이해로 가정으로 복귀한다. 허영과 퇴폐풍조를 <자유부인>으로 비꼬았다.
<애마부인>은 1982년 영화제목이다. 전두환 정부는 군사독재에 대한 무마용으로 ‘우민화(愚民化) 프로젝트’를 던졌다. 이때 <애마부인>이 방영되자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니는 장면이 성을 많이 개방시킨 셈이다.
폐쇄된 가정속박에서 벗어나 멍청한 남편을 용기 있게 만드는 벤츠부인, 항구에서 맺은 기생이 기약 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나비부인, 허영과 사교춤을 배워 퇴폐적인 행위를 한 자유부인, 구속된 성에서 헤어난 애마부인 등으로 분류됐다. 요즘은 부인도 ‘또순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 살아남기 힘 들다는 의미에서 부인 열전을 펴 보았다. 며칠 전 자살한 마광수 씨가 교수직이 아닌 자연인이었더라면 <즐거운 사라>가 성의 개방에 획기적인 선구자라고 칭송을 받고 아직 살아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