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2:55 (토)
거울을 깨뜨리며
거울을 깨뜨리며
  • 김금옥
  • 승인 2017.08.30 1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금옥 진해냉천중학교 교장
 “엄마, 그리움이 뭐예요?” 뉘엿뉘엿 해가 지는 산책길을 손을 잡고 걷던 딸아이가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모양이구나” 했더니 딸아이가 어떻게 알았냐며 펄쩍 뛰듯이 놀라면서 1살 연하의 남학생을 좋아하게 됐다는 고백을 했다. 엄마에게 비밀을 공유해 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사실 이건 비밀도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딸애의 짝사랑은 친구들은 물론 어쩌다 선생님들 사이에도 소문이 나서 교무실을 한바탕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그해 여름,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갔다. 기념품 가게 앞에 서서 장미무늬가 아로새겨진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길래 “남자친구 주려고?” 하는 의미의 눈길을 던졌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방을 열어 그 애에게 선물로 받은 손거울을 꺼내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열쇠고리는 가을이 다 가도록 딸아이의 책상 서랍 속에 그대로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열 열쇠를 그 열쇠고리에 달지 못한 것 같았다. 딸아이는 거울이 깨져버렸다고만 이야기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아이는 그때 ‘파경(破鏡) 거울이 깨진다’의 의미를 알고 이야기 한 것이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울이 깨지는 것은 매우 불길한 징조로 해석한다. 프랑스에서는 거울을 깨면 “7년 동안 이성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다. 부부가 이혼을 하거나 연애가 깨지는 상황을 ‘파경’을 맞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깨진 거울을 의미하는 ‘파경’의 어원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차이가 난다.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보면, 진나라 시대 미모의 낙창(樂昌)공주를 아내로 맞아 살고 있던 태자사인(太子舍人) 서덕언(徐德言)은 나라가 망해 아내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때, 거울을 반으로 잘라 나눠 가지면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수나라로 끌려가 건국공신 양소의 첩이 된 낙창공주는 서덕언과 약속한 정월 보름날이면 하인을 장터에 보내 깨진 거울(破鏡)을 비싼 가격에 팔게 했다. (깨진 거울이 너무 비싸 사가는 이가 없었다) 서덕언이 거울을 알아보고 시 한 편을 적어 거울과 함께 보내자 낙창공주가 읽고 슬피 울었다. 양소가 사정을 듣고 낙창 공주를 돌려보내고 재물까지 줬다고 한다. 파경, 깨진 거울이 잃었던 사랑을 되찾게 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인생은 불친절하지만 나는 행복하겠다’라는 책 속에서 저자는 행복의 비밀 중 하나로 “거울을 깨라”라고 조언하고 있다.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거울의 ‘나르시시즘’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은화(경남가족상담연구소 부소장) 씨의 ‘건강한 자녀 성장을 위한 부모 역할’에 대한 강연을 들으면서 깨뜨려야 할 또 하나의 거울이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자녀를 향해 들고 있던 부모의 거울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표정, 언어, 행동 등에 반응하는 타인을 바라보면서 성품이 형성된다고 한다. 타인이 아이의 거울인 것이다. 거울이라면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줘야 하는 것인데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확대해서 비춰준 것이다. 필자의 완벽주의와 조급한 자아가 투영된 거울을 자녀 앞에 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우리는 매일 주변 사람들의 거울인 셈이다.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타인을 치유할 수도 그들의 삶을 더 비틀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거울이 돼 줄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