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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팔서 육도의 지혜
무경팔서 육도의 지혜
  • 이광수
  • 승인 2017.08.29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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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고전을 읽으면 선조의 지혜를 깨닫는다고 했다. 온고이지신의 보고가 고전이다. 판타지류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누가 고리타분한 고전을 읽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건 고전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들이나 하는 말이다. 하기야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이 8.7권에 불과하다는 통계치를 보면 미뤄 짐작이 간다. 그중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20%나 된다니 유구무언이다. IT 강국이라고 큰소리치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들 고전을 외면해도 굳이 헌책방을 기웃거리는 맹한(?) 사람도 있으니 나도 그중의 한 사람에 속한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책 사는 데 낭비(?)한다고 핀잔을 듣기는 해도 어쩔 수 없다.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판이니 팔자소관으로 돌린다. 책을 읽지 않는 내 일상은 죽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책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책이 존재하니까. 얼마 전 본보 독자란에 ‘등소평의 도광양회’를 기고하면서 중국의 10대 병법서인 무경십서(武經十書)를 구해 단숨에 독파했다. 오랜만에 접한 중국 고전이지만 삼국지연의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다. 무경1서인 손자병법은 하도 유명해서 여러 교재나 글에서 자주 인용해서 낯설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2서부터 10서까지는 생소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 중 육도삼락과 삼십육계는 말로만 들었지 내용을 접하긴 처음이라 만시지탄의 감을 느꼈다. 물경 1천800쪽에 4권으로 된 무경십서는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무협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 ‘등소평의 도광양회’라는 기고문에서 인용한 원본인 무경 8서 육도에 대한 내용과 느낌을 개괄해 본다.

 육도(六韜)는 활집이나 칼전대로 그 의미가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파생됐다. 육도의 명칭은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의 6개 도로 나눈 데서 유래됐다. 육도는 주나라 건국 공신인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3천년도 넘는 역대 병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태공망은 강태공(姜太公)으로 잘 알려진 모락가, 군사가, 정치가이다. 그는 주나라 문왕에 의해 나이 80세에 책사이자 스승으로 발탁됐다. 문왕의 아들 무왕을 도와 상(尙)나라 주왕을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한 공으로 제(齊)나라 제후로 봉해져 그 시조가 됐다. 그러나 육도의 저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육도의 특징을 논함으로써 그 진위를 판단코자 한다. 육도는 첫째, 같은 시대를 다룬 ‘서경’ 등의 문체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매우 속되다. 둘째, 육도가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기병대 전술은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한 것으로 태공망 여상이 활약하던 서주 초기에는 전혀 볼 수 없는 병술이다. 셋째, 육도에 나오는 인의, 왕패, 권모, 거현, 장상분직 등의 용어는 모두 춘추전국시대에 나온 것들이다. 이런 점 등으로 미뤄볼 때 태공망 여상이 육도를 저술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경십서: 신동준 역주) 육도의 사상적 특징은 천하위공(天下爲公) 사상으로 “천하는 만인의 천하지 결코 군주 1인의 천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병서 중 천하위공사상을 선언한 것은 육도가 유일하다. 다음으로 “정치경제와 군사외교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군합일(政軍合一) 사상으로 장수(군)를 나라의 보배로 간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최고 통치권자와 기업 CEO의 리더십에 의해 국가와 기업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고 보는 견해와 같다. 세 번째는 문벌전승(文伐全勝) 사상으로 역대 병서가 역설하는 부전승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손자병법의 모공(謨攻)의 취지와 일치한다. 모공은 적을 완전히 심복하게 만드는 전승병법으로 최악의 경우 유혈전의 공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육도는 문벌(文伐)로 병사들이 칼로 부딪히며 싸우기보다는 융성한 문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무도 13장 벌계) 이는 등소평이 대외정책으로 차용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도광양회의 병법이다. 육도는 전편에 걸쳐 12가지 문벌 계책을 제시하고 있다. 네 번째 육도의 특징은 혼합병법(混合兵法) 사상으로 보병과 전차병, 기마병을 뒤섞어 입체적으로 용병하는 것을 말한다. 여타 병서에서도 여러 병술을 혼합한 작전을 역설하고 있으나 구체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전법을 제시한 것은 육도가 단연 으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유비가 임종 시 아들 유선에게 육도를 반드시 읽도록 유언했으며, 오나라 손권도 여몽장군에게 육도를 손자병법과 함께 읽도록 할 만큼 중요한 병법서였다. 육도는 흔히 삼략과 더불어 ‘육도삼략’으로 통칭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병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는 육도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지금 무경십서의 ‘육도’를 숙독해 보면 우리의 외교 국방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구사해야 할지 그 해답이 나올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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