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09 (토)
교조적 세계관 우려한다
교조적 세계관 우려한다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08.27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현 정부를 지지해온 시민사회단체와 좌파는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해왔다. 기성 기득권 세력의 독점적 지배구조를 허물고 시민 중심의 평등 공정사회를 꿈꿔왔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로 축약할 수 있다. 이념적으로는 경쟁과 효율보다는 인간 중심의 온정적 사회가 이들이 꿈꿔온 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탈핵, 친환경, 재벌구조의 해체 내지 개혁,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법률적 사회적 장치와 관행에 대한 개혁으로 표현됐다. 이런 진보진영의 요구 배경에는 이들이 바이블처럼 여기는 친일청산의 실패와 이어진 사대주의적 지배세력의 독점적 기득권세력이 불공평한 사회를 만들고 고착화했다는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진보라고 하는 인사들은 거의 다 그랬다. 적폐청산은 이런 인식의 표현과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과정에서 개발과 효율, 선택과 집중을 중시해왔고 그것이 광범위한 특혜와 불공정 구조를 낳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인정해도 이제는 그것을 지속할 이유도 받아들일 국민도 없다. 경제개발 역사 50여 년간 방치하다시피 해온 그것은 적폐든 무엇이든 청산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 정부는 8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사회개혁에 나설 것이다. 지금은 기초복지 및 의료보장 확대, 휴대폰 요금 등 서민부담 경감, 탈원전에 머물고 있지만, 조만간 개혁 회오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불어닥칠 것이다. 비록 사법부의 판단에서 시작됐지만 삼성 총수의 실형 선고는 우리 사회가 맞이할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만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우리나라 최고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혁명이 아닌 법률로 동시에 단죄되는 한민족 5천년 역사에 길이 기록될만한 상황을 맞는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개혁의 칼자루를 쥔 진보진영의 역사관과 세계관이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나 그들의 인식은 다분히 교조주의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질서가 상전벽해처럼 변했는데도 이들이 세계를 보는 인식체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냉전 구도의 붕괴,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중국 급부상, 유럽연합의 등장 등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고 강력한 노동세력의 등장, 시민사회의 성숙 등 국내 상황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변했지만 우리 사회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20대 운동권 적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개발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과 환경 만능주의, 재벌은 악, 노동자는 선이라는 이분법, 민족주의에 대한 맹신과 반미주의에 매몰돼 있다.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유연한 사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탈원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앵무새처럼 되뇌는 환경단체의 예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유연함이란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현 정부의 인식은 거의 화석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은 악이라는 맹신에 매몰돼 있다. 사실 비정규직이 악이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악이라고 봐야 정확하다. 무한경쟁 시대 기업 환경에서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기업에게는 족쇄나 다름없다. 아웃소싱이 보편화된 경제구조에서는 어느 정도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평생을 운동권에 몸담아온 한 지인을 얼마 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네가 기업 사장이라면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동의하겠나’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동의 안 하지”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이 거부하는 사회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에게서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주장한다는 망령에 덧씌워진 모습이 보였다. 비단 이 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직업적 운동을 해온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들이 개혁의 선봉에 서서 칼을 휘두른다면 재앙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땅히 막을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이 화석화된 교조적 세계관에서 보다 유연해 지기를 바랄 뿐인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