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과정에서 개발과 효율, 선택과 집중을 중시해왔고 그것이 광범위한 특혜와 불공정 구조를 낳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인정해도 이제는 그것을 지속할 이유도 받아들일 국민도 없다. 경제개발 역사 50여 년간 방치하다시피 해온 그것은 적폐든 무엇이든 청산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 정부는 8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사회개혁에 나설 것이다. 지금은 기초복지 및 의료보장 확대, 휴대폰 요금 등 서민부담 경감, 탈원전에 머물고 있지만, 조만간 개혁 회오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불어닥칠 것이다. 비록 사법부의 판단에서 시작됐지만 삼성 총수의 실형 선고는 우리 사회가 맞이할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만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우리나라 최고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혁명이 아닌 법률로 동시에 단죄되는 한민족 5천년 역사에 길이 기록될만한 상황을 맞는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과업을 앞두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개혁의 칼자루를 쥔 진보진영의 역사관과 세계관이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나 그들의 인식은 다분히 교조주의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질서가 상전벽해처럼 변했는데도 이들이 세계를 보는 인식체계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냉전 구도의 붕괴,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 중국 급부상, 유럽연합의 등장 등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고 강력한 노동세력의 등장, 시민사회의 성숙 등 국내 상황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변했지만 우리 사회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20대 운동권 적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개발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과 환경 만능주의, 재벌은 악, 노동자는 선이라는 이분법, 민족주의에 대한 맹신과 반미주의에 매몰돼 있다.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유연한 사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탈원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앵무새처럼 되뇌는 환경단체의 예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유연함이란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현 정부의 인식은 거의 화석화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은 악이라는 맹신에 매몰돼 있다. 사실 비정규직이 악이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악이라고 봐야 정확하다. 무한경쟁 시대 기업 환경에서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기업에게는 족쇄나 다름없다. 아웃소싱이 보편화된 경제구조에서는 어느 정도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평생을 운동권에 몸담아온 한 지인을 얼마 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네가 기업 사장이라면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동의하겠나’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동의 안 하지”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신이 거부하는 사회를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에게서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주장한다는 망령에 덧씌워진 모습이 보였다. 비단 이 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 직업적 운동을 해온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들이 개혁의 선봉에 서서 칼을 휘두른다면 재앙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땅히 막을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이 화석화된 교조적 세계관에서 보다 유연해 지기를 바랄 뿐인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