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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평의 도광양회
등소평의 도광양회
  • 이광수
  • 승인 2017.08.21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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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빛을 감추고 밖으로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을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기 위해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게 해 경계심을 풀도록 유도했던 계책이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런 고사뿐만 아니라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등소평이 대외정책으로 이 계책을 썼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지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출범시킨 후 기미정책(羈미政策)-중국의 역대 왕조가 다른 민족에게 취한 간접 통치정책-을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한때 권부에서 밀려났던 등소평은 68세에 모택동의 재신임을 받아 실권을 잡자 지난 1980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했다. 그 후 20여 년간 중국의 대외정책을 대표했으며 지난 2002년 11월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제4세대가 지도부에 입성하면서 도광양회는 화평굴기(和平굴起), 유소작위(有所作爲), 주동작위(主動作爲),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거쳐 시진평의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으로 일관되게 유지 계승돼 왔다. 현재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에 따른 유엔 차원의 대북 경제봉쇄정책에 중국은 미국의 입장을 일부 동조하면서도 한국의 사드배치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하며 무역 관광보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속내를 잘 알 수 있다. 자기보다 군사경제력이 강한 미국에는 등소평의 도광양회 대외정책을 유지하고 만만한 한국은 무역보복으로 압박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국민총생산 규모는 미국과 어깨를 겨누지만 실질적으로 세계 최강국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강조한 등소평의 대외정책이 국익추구에 실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실상부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도광양회 대외정책을 고수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등소평의 도광양회는 국제경제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으로 이는 중국의 고대 병법서인 무경십서(武經十書) 중 무경 8서의 육도 제2편 무도 13장 ‘벌계’에서 “싸우지 말고 이겨라”는 계책을 대외전략으로 차용하고 있다. 무도는 “무덕으로 천하를 평정한다”는 병법이다. 무경십서는 1서 손자병법, 2서 오자병법, 3서 사마법, 4서 울료자, 5서 손빈병법, 6서 장원, 7서 당리문대, 8서 육도, 9서 삼락, 10서 삼십육계로 구성된 고대 중국의 유명 병법총서다. 등소평은 이 중 무경8서의 육도 2편 무도 13장 ‘벌계’를 대외정책 구사의 전략으로 삼았다. 등소평이 무도 ‘벌계’를 대외정책의 기조 삼은 것은 문화대혁명으로 피폐해진 중국경제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발전시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중화사상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개혁개방으로 인민의 삶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미국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실용주의 노선이다. 문화혁명의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중국경제와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모택동 사상의 맹신이 걸림돌이었다. 이에 등소평은 모택동의 공적은 제일의(第一義)이고 과오는 제이의(第二義)라는 절묘한 재평가로 자신의 개혁개방정책을 합리화시켰다. 그는 심천, 주해, 아모이 등에 설치한 경제특구의 성공을 이끌어 냄으로써 자신이 선택한 개방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등소평의 도광양회 대외정책은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도 시장경제를 성공시킬 수 있음을 대내외에 실증한 표본이 됐다. 그는 “단호하게 미국에 대처하고 재주껏 미국을 이용하라”는 흑묘백묘론의 실천가였다. 내용을 중시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는 서양식 접근법의 폐기를 선언했다. 비민주적인 중국은 지난 20년간 13억 인민을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서구 전래의 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맹신의 도전이자 탈피를 선언한 것으로 등소평의 도광양회 실용주의는 시진평의 대외정책에도 그대로 유지 계승되고 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또 다른 저서 “군주의 거울”에서 “침묵하고 드러내지 마라. 강자의 지배 하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들어내지 말고 힘을 길러서 단호하게 치고 나가라”고 했다. 이는 등소평의 도광양회 대외정책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현재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 혼선으로 딜레마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대북정책 방향설정에 등소평의 도광양회 대외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잡는 고양이가 장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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