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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인생의 숙명
백세 인생의 숙명
  • 정영애
  • 승인 2017.08.21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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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25년 무명 가수였던 이애란 씨가 ‘백세 인생’이란 노래로 공전의 대 히트를 쳐서 스타덤에 올랐다. “6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하여라”로 시작되는 노래는 “100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로 끝난다. 100세까지 살았다면 천명(天命)을 다했으니 살 만큼 살았다는 자족감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100세가 됐다고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명에 대한 집착은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

 고령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의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숙명으로 여기던 사고를 바꿔 놓고 있다. 노화전문연구의학계의 말을 빌리면 노화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노화를 지연시키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노화의 원인물질을 제거하면 불로장생이 꿈이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천하를 통일하고 죽기가 싫어 불로장생약을 구하려고 했던 진시황의 염원이 실현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늙는다는 것은 고독한 삶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함께 살았던 배우자나 가족 및 친구들이 하나둘 자기 곁을 떠나고 빈 둥지의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돌아보면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자식들은 키울 때 자식이지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 나면 또 거기에 또 다른 빈 둥지의 삶이 시작된다. 정신과 전문의사인 이시형 박사는 “만년의 쓸쓸함은 숙명”이라고 했다. 일본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바람에 날리며’라는 책에 나오는 “인간의 만년이란 것은 쓸쓸한 게 당연한 일이다”를 인용해서 한 말이다. 고독, 외로움, 쓸쓸함은 늙어서 감수해야 할 삶의 한 과정이다. 그것을 애써 피하려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으니 숙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가수 이애란이 ‘백세 인생’을 노래했지만 우리가 언제 100세 장수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했겠는가. “인간 칠십 고려희”라 했듯이 70세까지 살아도 감지덕지(?)했던 때가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이다.

 요즘 독거노인 자살 소식을 자주 접한다. 가난과 질병, 자식들의 부모 방기, 허술한 사회복지 안전망으로 생긴 복지 사각지대의 방치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겠지만,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도 나라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일본의 노인들은 누추한 몸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보이기 싫어서 깨끗하게 죽는다고 한다. 일본인 특유의 염치문화와 사무라이 정신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노인은 “내가 저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불효막심한 놈들”이라고 서러워하며 죽는다고 한다. 한국 고유의 유교 전통인 충효 사상이 노인들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인 정책도 충효 사상을 근저에 깔고 있다. ‘부양 의무제’가 그 실체이다.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부모와 자식이 같이 사는 대가족제도가 무너진 지 오래됐지만 정부 정책 조차 유교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초노령수당의 지급과 함께 각종 노인복지 정책이 집행돼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노인복지의 실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경제력과는 달리 노인 빈곤율 OECD 1위(61.7%)라는 부끄러운 수치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자식이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부모를 부양하기 싫다면 중국처럼 효도법으로 부모부양을 강제하는 사회주의 국가라면 몰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물론 부모 유산을 상속받고 부양을 방기했다면 법적인 제재수단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부모 자식 당사자 간의 부양의무이행 소송절차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현 노인세대 중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정도의 재력가가 과연 몇%가 되겠는가. 노인복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게 보편적 복지의 첫걸음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인복지를 비롯한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 확대지원 대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일부 소외계층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높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재원확보 없는 복지정책은 사상누각이요 복지 포플리즘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어느 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고령사회를 맞아 노인복지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복지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삶은 항상 가변적이다. 오늘의 부자가 언제 가난뱅이로 전락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노인복지문제는 누구에게나 부닥칠 문제라는 보편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만년의 쓸쓸함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되 인간답게 살다가 죽을 권리는 보장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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