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2:27 (수)
“이봐 공 대리 모 봐”… 느낌이 있습니까
“이봐 공 대리 모 봐”… 느낌이 있습니까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7.08.1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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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육군 대장과 그 부인의 갑질이 세간의 화제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오랜 군 생활에서 몸에 밴 관행을 벗어 던지지 못한 것이 명예로워야 할 군 이력에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겼다. 최근 들어 힘있는 자들의 갑질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미스터피자 갑질, 종근당 갑질, 프랜차이즈 갑질 등 그동안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들의 야만적 행동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슬금슬금 세간에 회자되더니 이제는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타고 그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찰 등 다른 공공분야의 공관병에게까지 후폭풍이 부는 양상이다.

 진보적 역사관은 인류의 역사가 자유와 평등을 향해 진보해 왔다고 한다. 우리의 현대사도 이런 흐름을 이어왔다. 현대 한국의 역사는 절대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로부터의 자유를 향해 쉼 없이 달려왔다. 최근의 갑질 논란은 그 명예로운 자유를 향한 우리의 역사가 이제 부당한 대우로부터의 자유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지위를 가진 자, 경제력을 가진 자,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러지 못한 자들의 위에서 부당한 압력과 지시를 내려도 거의 대항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나돌았을까. 그 억눌려 왔던 분노와 좌절감이 폭발한 것이 최근의 갑질 논란의 본질이라고 봐야 한다. 을의 집단 반란이라고까지 하는 말의 이면에는 이런 문제의식과 기대가 깔려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갑질 논란에서 주목되는 점은 그것의 종착점이다. 단순히 한풀이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효과 여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제도와 관행의 대수술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수술이 세간에 드러난 갑질에만 그친다면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쌓여있는 불공정 관행을 타파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노력과 결실에 따라서는 현 정부 최대의 치적이 될 만하다.

 그 개혁은 역할의 철저한 분리와 존중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공관병에게는 본래의 역할 외는 시키지 말아야 하고 부당한 지시에는 거부할 권리를 주는 식이다. 프랜차이즈와 같은 계약관계에서는 표준약관을 만들어 불공정한 계약은 물론 계약에 없는 임의적 요구는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국회의원 독점권한인 보좌관 임명권도 인선은 국회의원이 하더라도 임명과 보수는 국회가 하는 식으로 바꾸는 것을 생각해 볼 만하다. 이런 식으로 사회 곳곳의 일그러진 게임의 룰을 바꾸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대표적 갑인 대기업 노조에 대한 대수술이 이뤄진다면 금상첨화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기업 노조에 대한 개혁은 말도 꺼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기업 노조는 슈퍼 갑임이 틀림없다. 육군 대장 한사람 때려잡는 데는 너도나도 나서면서 거대악인 대기업노조에 대해서는 양보만 외칠 뿐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이율 배반이다. 최소한 경영 부분에 대한 간섭은 못 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리하더라도 가장 힘든 부분이 남아있다. 우리 개개인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갑질 근성이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들의 어처구니없는 모욕과 갑질은 갑질이 남의 문제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5층에서 던져 주며 먹게 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과 욕설에 견디다 못한 경비원이 분신한 사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는 담배를 피우며 큰 소리로 전화하던 입주민이 조용히 해 달라는 경비원에게 욕설을 하며 담뱃불로 얼굴을 지진 사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든 것으로 밝혀져 긴급 회수 조치가 내려진 치약을 경비원에게 선물이라고 내민 사례 등은 갑질 문화 개혁이 지난한 일임을 시사한다. ‘이봐 공 대리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모 봐’하는 TV 광고를 보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갑질 근성을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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