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2:46 (금)
자주국방의 맹점
자주국방의 맹점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07.30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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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는 안보를 지키고 자주권을 확보해야 하는 숙명적 난제를 던져주고 있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는 그 난제를 풀어보려는 몸부림이다. 모든 외교의 중심에는 안보와 자주권 확보라는 두 축이 작동한다. 통상 외교도 이 두 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역대 정권은 자주와 안보를 바이블처럼 외쳐왔다. 여기에 반대하려면 국가관이 없는 매국노 취급을 각오해야 한다. 오랜 외침에 시달려온 우리의 역사는 이런 강박을 더욱 강요한다. 강력한 군사력을 키워왔던 고구려와 고려는 오랜 외침 속에서 온 국토가 유린당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나라를 지탱할 수 있었던 데 반해 군사력이 약했던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고 탱크 하나 없는 신생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반된 경험은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맹신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넘어 불가능한 목표라는 생각이 갈수록 짙어진다. 자주국방의 상대가 북한만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또 그 대상을 일본까지 확장한다 해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주국방의 대상을 중국, 나아가 러시아로 확대한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군사기술과 군대 규모, 군사 장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뒤떨어진다. 적어도 하드웨어 측면에서 이들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단기간의 군사접전에서는 우위에 선다 하더라도 장기전에서는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핵으로 무장된 이들 나라를 군사력으로 대적한다는 것은 헛된 구호일 뿐이다.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을 재구성,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 ‘자주’라는 이름 앞에 누구도 내놓고 말하는 이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 우리 사정에서 지금까지의 자주국방 개념을 앞으로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데 있다. 우리의 국방예산 규모는 GDP 대비 2.4% 수준.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20조 원이던 것이 이명박 정권에서는 30조 원을 넘었고 올해 40조 원을 돌파했다. 올해 국방예산은 전력운영비가 28조(병력운영비 17조 원, 전력유지비 11조 원), 방위력 개선비가 12조 원으로 짜여져 있다. 자주국방의 개념을 달리하면 상당액을 줄일 수 있거나 적어도 크게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이 돈을 국가경쟁력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 돌릴 수만 있다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상당수를 푸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무기 현대화와 군 사기를 위한 투자는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들 강국과 무한 군비경쟁은 가능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데만 동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물론 안보와 국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여전히 한반도에 대한 개입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는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아시아 맹주를 향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국, 통제 불가능한 북한을 옆에 두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 이 두 명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그러나 ‘자주적’이라는 명제를 우리 스스로의 완벽한 억제력을 전제로 한다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일이 될 수 있다. 영원한 동맹이란 있을 수 없지만 우리의 안보는 동맹과 외교로 지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군사력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한다면 불가능에 목표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새 정부는 국방예산을 임기 내에 2.9%까지 올릴 것을 공언하고 있다. “새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지만 이 역시 압도적 국방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러나 압도적 국방력을 어디까지로 설정하느냐 하는 고민은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자주’, ‘압도적 국방력’만 외쳐지는 것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고 본다.

 수많은 이민족과 수와 당의 침략을 물리치고 중국대륙에 광활한 대제국을 형성했던 고구려가 단 한 번의 실패에 망국의 길을 걸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은 나라가 생존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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