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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이 바람을 만들 때
역사의 숨결이 바람을 만들 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7.20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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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역사는 그 자리를 돌다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

 지난 12일 숨진 류샤오보(劉曉波)는 중국 정부가 싫어했던 반체제 인사다. 류샤오보는 지난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의 주요 인물이다. 그는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시상식은 그가 앉을 빈 의자와 함께 거행됐다. 류샤오보는 죽었어도 중국 당국이 SNS 등 모든 매체를 통제하고 검열을 강화해 중국인 가슴에서 별이 되지 못했다. 류샤오보는 빈 의자를 남겼지만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인간 자유의 열망을 그려놓았다.

 류샤오보 시신은 유가족의 반대에도 화장돼 바다에 뿌려졌다. 홍콩 시민들은 바다가 보이는 홍콩 빅토리아항 애드미럴티 타마르공원에서 류샤오보를 추모하고 있다. 빈 의자에 또 하나를 더해 바다가 류샤오보의 상징이 됐다. 중국 당국이 죽은 류샤오보를 두려워해 모든 매체를 꽁꽁 묶어도 빈 의자를 두고 류샤오보를 기리고, 바다를 보며 류샤오보가 남긴 자유, 인권, 평등을 떠올리는 생각을 끊을 수 없다.

 역사는 시대마다 위대한 사람의 숨결을 따라 거대한 바람을 만들지도 모른다. 한 위대한 사람의 삶에서 뱉어낸 숨결이 여러 사람의 가슴에서 뛰면서 발전의 길을 만든다. 류샤오보는 민주화를 막은 죽의 장막에 비폭력으로 맞섰다. 여전히 죽의 장막은 곤고하게 드리워져 있지만 언젠가 죽순을 비집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류샤오보는 중국의 일당 독재체제가 문화대혁명이나 톈안먼 사건을 내세워 인간의 권리를 탄압하고 숱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해댔던 류샤오보를 중국 당국이 좋아했을 리 없다.

 역사는 거대한 흐름을

 막아서는 반골이 만든다.

 역사는 실제 우매하다. 통상 기득권층이 이끄는 세상은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은 물처럼 늘 흐르는 방향을 따른다. 그런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은 예사로 세상 속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오직 한 방향으로 달리기를 강요하는 기득권층을 향해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아차’ 하며 스르륵 넘겼을 역사의 한 장을 한 사람이 각성시켜줘 우리는 우매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사는 똑똑한 한 인간에게 배워서 진화하는지 모른다. 반골이 많이 나와야 역사는 혐오증을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세상이 너무 빛난다. 2~3년 지나면 최저임금 시급이 1만 원이 돼 모두 잘살 것처럼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새 정부는 촛불 혁명 정신을 잇겠다고 했다. 또 국민이 주인으로 대접받는 나라, 모든 특권ㆍ반칙ㆍ불공정을 없애고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무슨 선언적인 내용 같기도 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새 정부는 당연히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뜬금없이 소리 같지만 전 정부의 적폐를 없애겠다고 매일 부르짖는 마당에 이 정부가 공평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그 정부가 그 정부’라는 소리를 들을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문재인 정부는 전 정부와 확연히 다른 국가 경영을 하려고 꿈에서도 다짐할 게 분명하다.

 공평이 넘치는 ‘파라다이스’로 가기 위해 잘못하는 일을 깨닫게 하는 거친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를 새겨야 한다. 우리 정치에서는 거스르는 말을 던지는 사람의 말이 우아하지 못하다. 막말을 해 대는 통에 뼈 있는 말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돌려세우는 게 공평은 아니다. 공평한 사회를 만든다는데 피켓을 들고 시위할 사람은 없다. 공평이 되레 불공평이 돼 문제다. 공평과 불공평이 맞물린 선에서 많은 사람이 헷갈린다. 이럴 때 선을 제대로 그으려고 앞장서는 반골이 요즘 돌을 맞고 있다.

 역사는 반복이 아닌

 반골에게 배워서 진화한다.

 중국이 류샤오보의 죽음을 덮고 추모를 막아도 빈 의자가 곳곳에 등장한다. 빈 의자에 영정을 올려놓고 절을 하는 사진이 트위터와 페북, 인스타그램에서 퍼지고 있다. 중국은 또다시 빈 의자를 검열할지 모른다. 저항, 자유, 희망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을 뻗은 사진도 SNS에 올라온다. 류샤오보가 거대한 세력에 저항했어도 그 세력은 그대로 있다. 앞으로 류샤오보의 외침은 서서히 중국 사회에서 힘을 쓸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렇게 진화한다. 우리나라에도 정의를 가장한 엉터리 정의가 주체가 되지 못하도록 반골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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