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3:36 (금)
갈수록 심화되는 분노조절장애
갈수록 심화되는 분노조절장애
  • 이광수
  • 승인 2017.07.18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광수 소설가
 연일 맹위를 떨치는 폭염으로 대지가 펄펄 끓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 불쾌지수까지 올라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된다. 작은 자극에도 분노가 폭발해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이런 때 일수록 자기감정을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이 절실하다.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런 선한 마음으로 절제되고 다스려 진다면 사건 사고가 생기겠는가.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린다. SNS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나도 가끔 비분강개(?)해서 댓글을 달았다가 선플달기운동이 생각나 금세 지워버리고 만다. 댓글을 다는 사람의 심리는 자기 분노의 표출이다. 정부정책이나 특정사안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폭발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특히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시각으로 양분된 모모 댓글 부대의 논쟁은 점입가경이다. 객관적인 평가나 합리성이 결여된 맹신 아니면 광적일 정도로 내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그칠게 의사표시를 하고 있어 국론분열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분노조절 장애는 일종의 정신질환에 가깝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표출하는 성격장애를 말한다. 분노조절장애의 문제점은 그런 증상이 원인이 돼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묻지마 범죄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현상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피력하면 벌컥벌컥 화를 잘 내어 대화의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다. 대개 성인이 분노조절장애를 겪을 경우 정신질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이런 증상을 방치할 경우 폭력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자해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불안장애, 두통, 우울증, 신경강박증 등의 2차적인 정신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정신과 의사들은 경고한다. 한국인들에게 흔한 화병은 외국인들에게는 없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적 질환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며 만사가 불만스러운 가운데 식욕마저 떨어진다.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유독 많은 병이다. 억압받고 차별받는다는 피해의식이 해소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누적되면 화병이 된다. 이것 역시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태생적일 수도 있고 성장 과정에서 겪은 나쁜 일들이 트라우마가 돼 발생할 수도 있다. 지난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교사가 고교생 동수와 준석을 두들겨 패면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하고 힐문한다. 둘 다 선뜻 대답하지 않자 무차별로 매질을 하는데 동수는 순순히 매를 맞고 참지만, 준석은 넘어진 채로 발길질까지 당하자 벌떡 일어나 교사와 한 판 붙으려고 한다. 이때 학생들에게 화풀이하듯 마구 주먹질하는 교사와 그래도 마지막까지 꾹 참는 준석 중 누가 분노조절 장애자일까. 바로 교사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온갖 스트레스가 분노조절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분노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은 2000년대 이후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와 사회계층구조의 견고화로 계층 상승의 통로가 차단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전설이 된 지 오래고, 흙수저가 금수저 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시대가 됐다. 경영학의 구루로 추앙받았던 피터 드러그는 그의 명저 "단절의 시대"에서 기존의 제도와 관습적인 것들이 새로 발생하는 문화와 충돌하는 단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 우리는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초스피드로 변화하는 적응성의 위기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갈수록 짧아지는 라이프 사이클에 적응하지 못한 구세대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런 결과로 나타난 계층 간, 세대 간의 격차는 소통 부재로 이어져 대립과 갈등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우리 같은 5060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며 상대하기를 기피한다. 반면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성과를 감지덕지는커녕 당연한 것처럼 독차지하려는 신세대를 비난한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소외된 구세대는 자기무시에 대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영원한 꼴통으로 낙인된다. 미극의 소설가 존 스타인 백은 `분노의 포도`에서 1930년대 초 대공황으로 피폐해진 미국 민중의 분노를 표출했듯이 어느 시대나 인간의 욕망과 현실은 괴리되기 마련이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병적인 것을 떠나 우리 사회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는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화합할 때 분노의 조절은 가능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