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6:33 (금)
비혼 시대
비혼 시대
  • 정영애
  • 승인 2017.07.06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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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최근 연예인 김숙과 김수홍 씨가 비혼식(非婚式)을 올려 화제가 됐다. 비혼(非婚)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인 반면 미혼(未婚)은 결혼을 하기는 하는데 아직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전자는 결혼 포기이고 후자는 결혼 대기이다. 요즘 비혼식이 결혼식처럼 지인들에게 알려 축의금(?)도 받는다니 우리 같은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들다. 결혼을 안 하면 되지 공식적으로 알리기까지 해야 하는지 얼른 수긍이 안 간다. 청년실업난이 심각해 7포세대니 N포세대니 하며 자포자기적인 표현들을 하지만 인륜지대사인 결혼을 거부하는 풍조는 그다지 반길 현상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물론 비혼이라고 해서 남녀 간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인 혼인상태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동거나 연인관계로 지내는 것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서구 특히 프랑스가 비혼 상태로 사는 동거 부부가 많기로 유명하다. 일국의 대통령조차 비혼 상태이었던 걸 보면 자유로운 영혼을 누리는 삶을 선호하는 그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유명인사들 중 비혼으로 평생을 산 사람들이 많다. 20세기 여성 패션의 레전드였던 가브리엘 샤넬은 우리나라에선 샤넬 넘버5 향수로 잘 알려져 있다. 코코 샤넬이라는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던 그녀는 비혼인 상태로 뭇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살았다. 유부남 카펠, 영국의 대부호 민스터 공작, 폴 이리브를 비롯해 57세 때는 13살 연하인 독일군 장교 폰 딩글라게와 동거 등 많았지만 비혼으로 살았다. 세계 여성패션계의 전설로 군림했던 그녀는 88세까지 장수했다.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 역시 비혼으로 살았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끝내 수상을 거부한 프랑스적인 레지스탕스였다. 그는 페미니즘 탄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가 시몬느 보부아르를 대학 재학 중에 만나 연인 사이가 돼 평생 반려자로 지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번거로운 일상적인 삶에 구속받기 싫어서 자식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 사람 금세기 미국 최고의 MC로 불리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역시 비혼녀이다. 그녀는 스테이트 그레이엄과 연인 사이로 지내다가 1992년 약혼했으나 윈프리가 일에 몰두하기 위해 고집하는 바람에 결혼까지 이르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CBS 간판프로인 오프라 윈프리 쇼를 25년간 진행하며 명성을 날렸다.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린 그녀의 쇼에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초청받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기꺼이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그녀는 흑인 사생아로 태어나 친척에게 강간까지 당하는 불운을 딛고 일어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나는 실패를 믿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그녀의 지론인 ‘인생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로 오프라이즘(OPRAHISM)을 낳기도 했다. 토크 쇼 은퇴 후 그레이엄과 30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각종 자선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물론 위에서 예로 든 세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고 서구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꼭 법적인 결혼 상태로 사는 것만이 최선의 삶의 방식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해 결혼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승리를 일군 사람들이기에 비혼을 부정적으로 몰아세우기에는 시대 감각이 무딘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젊은 남녀의 결혼 평균연령이 31살을 넘어섰다. 결혼연령 상승과 함께 비혼 인구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이웃 일본은 우리보다 더 심하고 유럽 쪽은 비혼이 트렌드 화한 느낌이다. 법적인 결혼보다 자유롭게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인정하면서 동거 내지 연인 사이로 사는 삶의 형태가 더욱 보편화 될 것 같다. 그러나 가뜩이나 낮은 출산율(1.24명)로 인구 절벽이 우려되는 상황에 처한 우리로서는 인구 정책적인 측면에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출산장려를 위해 각종 유인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욜로(YOLLO)족의 출현에서 보듯이 삶의 패턴 변화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5월 21일이 부부의 날이었는데 기혼자는 물론 미혼자들에게도 그저 평범한 날로 의미 없이 지나갔다는 여론조사보고가 있었다. 결혼 인식에 관한 20~40대 미혼남녀 1천325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남성 74.3%, 여성 92%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미혼남의 경우 내 집 마련, 결혼비용이 1위를, 자유로운 삶의 포기, 출산 육아 부담 순으로 나타났으며, 여성의 경우 자유로운 삶의 포기가 1순위, 그다음으로 새로운 가족(시댁)에 대한 부담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 건수를 보면 28만 2천명으로 전년도 30만 3천명보다 7.3%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결혼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볼 때 40대 미혼자녀들은 자의든 타의든 비혼을 결심했거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비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 나는 시대가 됐다. 혼밥ㆍ혼술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는 비혼은 현대인의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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