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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소중한 가치
인문학의 소중한 가치
  • 이유갑
  • 승인 2017.07.05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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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ㆍ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긴 가뭄 끝에 목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비가 시원스레 내리고 있다. 사람도 식물도 제철 맞은 생선처럼 생기가 돈다. 창밖으로 온갖 색깔의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오래전에 봤던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생각난다.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노르망디에서 우산장수를 하는 엄마의 딸로 나오는 까뜨린느 드뇌브의 매력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대학의 교양강좌에서 철학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철학(哲學)의 ‘철(哲)’은 밝음을 뜻한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고, 철학을 하면 지혜로워진다고 배웠던 기억이 뚜렷한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최첨단의 정보화시대를 넘어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답을 즉시 찾기를 원하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봐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원리나 이치를 탐구하려 들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에서 즉시 상세하고 정확한 답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살다 보니 청소년 세대에게는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구닥다리(Old Fashioned)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래서 두 단위나 세 단위 수 이상의 곱하기나 나누기를 잘 못 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별로 놀랍지 않다.

 인문학의 쇠퇴나 몰락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자연현상에 대한 실증 과학적인 분석과 탐구를 통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개발하고,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가는 자연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은 헤아리기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연구해가는 사회과학과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가치 또한 소중한 것이다. 심리학이나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사회과학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혜택은 얼마나 크며, 문사철(文史哲)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힘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가는 능력을 키워준다.

 전 세계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학업 성취도 평가(PISA)를 총괄하는 OECD의 안드레아스 슐라이허(Schleicher) 교육국장은 “한국의 학생들은 수학의 공식과 방정식은 잘 알지만, 중화권(중국, 홍콩, 싱가포르)과 인도의 학생들처럼 수학자와 같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학생은 보기 드물다”라고 했다. 이에 덧붙여 한국 교육의 약점으로서 “시간이 지나면 효용성이 떨어지는 지식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암기하는 데 너무 매달리는 것”을 지적했다. 이런 데서 벗어나서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호기심과 열린 마음,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을 연결할 줄 아는 사고력이 뒷받침될 때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당장 눈에 띄는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해서 학문의 가치를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조선 시대의 교육에서도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논리적인 사고능력과 함께 세상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 주기 위해 청년들에게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배우고 익히게 했다.

 아울러서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가는 데 필요한 감성과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시도 쓰고 좋은 글도 읽으면서 그림도 그리게 하는 시서화(詩書畵)도 권장했다.

 4차 산업혁명을 실질적으로 이뤄가는 것은 자연 과학자와 첨단 기술자들의 몫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세계를 미리 상상하면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은 인문학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문학은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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