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55 (금)
미움받을 리더십 미워할 수 없다
미움받을 리더십 미워할 수 없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6.29 2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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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인간과 세상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실용적인 지혜다.
지역주민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자치단체장을 보고 싶다
▲ 류한열 편집부국장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벌써 “시장ㆍ군수에 누가 나온데”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런 이야기에 여러 사실이 더해져 나중에 실제가 된다. 4년마다 치러는 지방선거에 처음 출사표를 던지려는 인물이나 재선ㆍ삼선을 노리는 현직 자치단체장이 오직 선거에만 목을 매는 일은 자연스럽다. 현직 자치단체장은 선거가 다가오면 다시 당선되기 위해 괜히 무리수를 둬 책잡히지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과대포장해 알리는 전략이 지역주민한테 더 잘 먹히기 때문이다.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 내년 지방선거을 앞두고 미움받은 리더십을 발휘할 지방자치단체장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새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힘을 실으면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이 중단됐다. 이미 1조 6천억 원이 투입된 원전 건설이 너무 쉽게 멈췄다. 정부가 신고리 5ㆍ6호기 포기 여부를 시민배심원단 판단에 맡기겠다고 발표하면서 환경ㆍ시민단체는 건설 백지화에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탈핵양산시민행동 등 시민단체와 정당은 29일 양산시청 프레스룸에서 “신고리 5ㆍ6호기 백지화는 안전하게 살고 싶은 국민들의 당연한 요구다”며 “탈원전은 에너지 민주주의를 만드는 길이다”고 말했다. ‘지금 탈원전만이 살 길이다’는 말에 토를 달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신고리 1호기가 40년 만에 생명이 꺼졌다. 지금까지 값싼 전기를 공급하고 끄트머리에 국민생명을 볼모 잡은 원흉이 됐다. 말 못하는 원자력발전소는 그렇다 치고 탈원전에 두 손 들고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정치인ㆍ자치단체장 등 리더는 별로 없다. 탈원전 후 전력수급 계획 등 대책이 흐릿한 상태에서 모두가 몰아붙이는 모양새다.

 꾸민 이야기 하나. G 시에 폐기물고형연료(SRFㆍSolid Refuge Fuel) 열병합발전소를 지으려는 한 기업이 있다. 이 기업 A 사장은 고형연료 처리는 일반폐기물 소각과 달리 유해물질을 선별하기 때문에 오염물질 발생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형연료 발전사업은 신재생에너지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탈원전ㆍ탈석탄 시대를 밀고나갈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궁합이 맞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발전소를 G 시에 건설하려는데 걸림돌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복잡한 문제를 간추려 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고 A 사장은 확신하다.

 A 사장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 재생가능에너지 사용 비중이 1.5%로 조사 대상 46개국 가운데 45위다. OECD가 내놓은 ‘녹색 성장지표 2017’에서 따온 자료다. A 사장은 고형연료 발전사업은 가스와 태양광, 풍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경제성이 우수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한대도 작은 우려 때문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얼굴을 벌겋게 달군다.

 실제 이야기 하나. 고형연료의 평가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폐기물을 원료로 가공하기 때문에 결국 쓰레기를 태우는 꼴이다. 오염불질 배출이 많다는 시각이 살아 있다. 그렇지만 폐기물 선별 파쇄 등 가공공정을 거쳐 단순한 폐기물과 비교할 수 없는 연료라는 입장이 있다. 생활쓰레기를 태울 때 나오는 오염물질 배출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적다는 시각이 또 있다. 고형연료가 어차피 처리할 쓰레기하면 매립보다는 소각하는 게 낫고, 소각하면서 나오는 에너지를 회수해 쓰면 여러 이점이 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생활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어지는 꾸민 이야기 하나. G 시는 다른 도시에 비해 고형폐기물을 배출하는 공장이 엄청 많지만 처리할 열병합발전소가 한 곳도 없다. A 사장은 이 말을 하면 담당 공무원은 다짜고짜 환경 관련 시설이라고 반대를 한다며 푸념한다. 새 정부가 역점을 두는 신재생에너지 시설인지만 그런 걸 고려하는 공무원은 없다. 다급한 A 사장이 G 시 시장를 찾아가 하소연을 했지만 들은 얘기는 지방선거가 1년도 안 남아 사업을 도울 수 없다 것뿐이었다. 사업진행이 늦어져 회사가 어려워지는 판국에 이 대답을 듣고 A 사장은 실의에 빠졌다. 앞에서 밝혔듯 지어낸 이야기다.

 A 사장이 마지막 한 말이 쟁쟁하다. 민선시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시장은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을 지원하기는커녕 되레 걸림돌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갑’인 지역주민의 마음이 조금만 불편해도 필요한 사업을 소신껏 밀고나갈 수 없는 자치단체장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거대한 산과 같다.

 지어낸 이야기에 나온 A 사장 같은 사람은 우리 주위에 많다. 지역에 도움을 주는 사업은 적극 밀어줘야 하지만, 유권자에 미움을 받기 싫어 자치단체장이 뒷짐을 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소신에 따라 처리하는 자치단체장을 몇 명이나 될까? 괜히 나서 매을 맞기보다 어정쩡하게 두루뭉술한 리더십을 발휘하는게 몸 보신에 좋을 수 있다. 미움받을 리더십을 발휘해야 전체적으로 지역사회가 발전하는데 그 소리에 귀를 닫는 자치단체장일수록 내년 선거에 더 유리하다는 해괴한 논리가 박살나는 꼴을 보고 싶다. 리더십은 인간과 세상을 섬세하게 이해하는 실용적인 지혜다.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지역주민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자치단체장은 어디에 있기는 할까.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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