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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과 타협의 시대
설득과 타협의 시대
  • 이유갑
  • 승인 2017.06.21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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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ㆍ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모처럼 내린 비로 천지 사방이 훤하고 깨끗해진 느낌이다. 가뭄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비를 머금은 꽃들과 채소들은 다소 생기를 되찾은 듯하다. 애타는 농부들의 시름을 풀어 주는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현실은 여야 정당들 간의 협치(協治)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의 진정한 협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갖춰져야 할뿐 아니라 승자독식(勝者獨食)보다는 상생(相生)의 원리가 현실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승자독식은 근본적으로 제로 섬 게임(Zero-Sum Game)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체의 합이 제로(0)인 이 게임은 승자가 가지고 간만큼 패자는 잃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기기 위한 싸움도 치열하지만, 승패가 갈리고 난 뒤의 상황은 더 살벌하다. 이제는 이런 비인간적인 시대를 끝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달리 나도 승자이고 너도 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상생의 원리는 게임에서 이긴 승자는 좀 덜 가져가고, 진 패자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기에 죽고 살기 식의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핵심적인 단어 즉, 화두(話頭)는 소통이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사회가 되려면, 개개인이 나의 주장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다 틀렸다는 독선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상대를 설득하고 때로는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얻어 가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좋게 말해서 정통파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했다. 다르게 말하면, 정해진 원래의 형식이나 절차를 고스란히 지키는 원칙주의자들의 주장이 강했기에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타협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고 중국에서도 번성한 종교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불교가 더 전통을 잘 지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중국에서 시작된 주자학을 고려 말 안향(安珦)이 받아들임으로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유학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조차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고 형식에 치우치는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명나라 시대에 양명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절대 다수의 선비들은 양명학을 비롯해 18, 19세기의 실용성을 추구하는 북학파까지 모두 이단의 학문이라고 규정하면서 오로지 주자의 전통을 이어 받은 성리학만이 참된 학문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왕이 죽고 난 후의 제례와 복제에 대한 윤선도의 상소에서 비롯된 예송 논쟁(禮訟 論爭)이 실속없는 명분 싸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논쟁은 노론의 우두머리인 송시열 등에 의해서 자꾸 키워지면서 지루한 당파 싸움으로 이어졌다. 이런 부질없는 논쟁과 꽉 막힌 옹고집이 나라를 잃게 했다.

 설득은 총이나 칼, 혹은 폭력과 같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말과 글, 신체 언어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또 설득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느낌을 줘야만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긴 시간 노력해야만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타협은 전체의 이득을 위해서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함으로써 이뤄진다. 개별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겼다는 말처럼, 작은 부분은 잃더라도 큰 틀에서 얻으려고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상생과 의사소통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면서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설득하고 타협함으로써 함께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모범을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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