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3:09 (금)
악동과의 만남
악동과의 만남
  • 이영조
  • 승인 2017.06.15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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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악동과 만남은 상담사로서 또 다른 성장을 이끈 계기가 됐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동그라미를 알게 됐다고 하시며 상담을 청하신 악동의 어머니와 상담실에서 마주 앉아 초기상담을 할 때만 해도 내담자의 문제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고 다소 분주한 성향을 보이는 정도일 거라고 간단히 생각하고 악동과 첫 번째 만남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만난 아동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자기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며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은 상담을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잠시도 집중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저는 1분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라고 하며 상담실 문을 열고 아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내담자를 강제로 제어할 수 없기에 그대로 두고, 부모가 확인하는 ADHD 척도지를 통해서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를 종합해 보니 심한 정도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이의 검사결과를 말씀드리고 앞으로 상담 일정과 계획을 세웠다.

 그 아이가 보이는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은 잘못된 뇌 신경의 지배를 받아서 나타난 행동이지 인성교육이 잘못돼서도, 반항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ADHD를 치료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부모님에게 아이의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변화를 시도해 나가자고 동의를 구했다.

 다음날부터는 함께 놀아주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사에 호응을 해주고 그의 요구를 거부하기보다 수용하며 자기 생각에 맞춰줬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인정받은 아이는 상담사의 프로그램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반응일 뿐 반항적이고 거친 행동을 하는 것은 여전했다. 막 나가는듯한 과잉행동이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상대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 것은 상담사로서 또 다른 인내를 요구했다.

 아이의 심리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양육하는 부모님의 태도 변화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아이를 상담하는 것과 동시에 부모 상담도 함께 진행했다. 우선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도록 충분한 설명을 드리고 아이가 스스로 조금씩 변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자고 당부드렸다.

 강한 어른의 힘으로 행동을 수정시키려고 하지 않았고 부드러운 말과 눈빛으로 그를 이끌어갔다. 모래 놀이를 하면서 금방 싫증을 내고 모래를 밖으로 퍼내며 내면의 화기를 표출하는 모습에도 묵묵히 기다려 주면서 “왜 그래~, 오늘 화나는 일 있었구나”라고 차분한 감정선을 유지하며 물었고 흥분되거나 평정심을 잃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는 상담회기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편안히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3분을 참아 냈고, 5분을 넘길 정도로 인내심이 향상된 것은 굉장한 변화였다. 행동도 점차적으로 차분해지고 피규어 하나를 가져와 세워놓는데도 그것들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명상을 20분 동안 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만약 성공하면 선물을 달라고 하는 요구에 즉각 동의를 하고 나는 카운트에 들어갔다. 이 아이가 과연 해낼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갖고 지켜봤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엄마와 아빠에 대한 자기 불만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자기 의지를 되찾았고 어느새 미운 악동에서 귀엽고 착한 소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기 의지와 다르게 행동하게 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학교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되고 본인도 정상적인 친구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이제 악동 소년은 건강해졌다. 과잉행동도 자제할 수 있게 됐고 충동성도 스스로 조절이 가능해졌다. 더불어 부모의 표정도 밝아졌다. 한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상담 기간 내내 그 아이가 보여준 반응은 상담사로서도 감당해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돌발적인 언행은 순간순간 당혹감을 자아내리만큼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악동과 보낸 시간은 보람으로 와 닿는다. 이제 그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종결 상담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렸다. 천천히 상담 후기를 적어 내려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동안 힘들어했던 많은 기억들과 행복감을 함께 봤다. 상담실 문을 나서는 악동을 꼬옥 안아주는 원장님 가슴에 안겨 울먹이는 목소리로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는 아이는 악동이 아니라 예쁜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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