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搜勝臺(수승대)
搜勝臺(수승대)
  • 송종복
  • 승인 2017.06.14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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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搜:수-찾다 勝:승-뛰어나다 臺:대-장소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으로 한때는 백제의 땅이었다. 국운이 기우는 백제가 신라에 사신을 보내는 길목으로 이곳에서 사신의 근심을 풀어 배웅하는 곳이다.

 수송대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이며 양국의 접경지로서 한 때는 백제 땅이었다. 백제는 660년에 망하고 이어 신라는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던 시대다. 따라서 이곳은 7세기 초부터 이름난 명승지이다. 당시 백제는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반면에 신라는 기세가 등등했다.

 백제는 이곳을 통해 신라에게 사신이 보내는 통로이다. 백제의 사신이 이곳에서 출발해 신라에 가면 온갖 수모를 당하며 심지어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라에 가는 사신에게 걱정근심을 풀게 해 보낸다는 뜻으로 수송대(愁送臺)라 한다. 즉, 근심[愁]을 풀게 해 사신을 보내[送]는 곳[臺]이란 뜻이다.

 조선 중종 때 인근 안의현에 와 있던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수송대라는 내력을 듣고는 ‘근심 어린 송별’이란 뜻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절경에 비해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 해서 이곳을 예찬한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명칭이 수승대(搜勝臺)로 바뀌었다. 즉, 찾다(搜), 뛰어나다(勝), 평평한 곳(臺)이라 해 종래는 근심으로 보내는 곳이지만 지금은 이 화려한 경치에 비유될 수 없다고 해 ‘뛰어난 명승지를 찾았다’는 뜻으로 수승대(搜勝臺)라 했다. 이어 당대에 낙향해 있던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선생이 이 거북바위에 수승대라고 각인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수승대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계곡 한가운데는 넓은 화강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반 위를 흐르는 유수와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어 지난 2008년에 명승 제53호로 지정했다.

 ‘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자요수 인자요산: 知者樂水 仁者樂山)는 말처럼 언제나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즐겼던 옛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는 곳이 바로 거창의 ‘수승대’라고 본다. 이곳은 신권 선생이 중종 35년(1540)에 구연재(龜淵齋)를 지어 후학을 양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같이 유서 깊은 거창의 ‘수승대’를 찾으면 그간의 근심ㆍ걱정은 사라지고, 낭만과 풍류로 마음껏 느껴볼 수 있을 곳이다. 진나라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찾으려면 바로 거창의 수승대(搜勝臺)를 찾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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