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38 (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자살 예방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자살 예방
  • 이영조
  • 승인 2017.05.25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영조 동그라미 심리상담센터장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한국. 이런 통계를 뒷받침하듯 신변을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귀에 전해진다.

 자살은 살아있는 생명을 주검으로 바꿔 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대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해 보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당사자의 생각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음을 알기에 안타까움이 더없이 크다.

 자살은 왜 하게 되는 걸까? 자살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고 또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필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을 시도했던 Y씨와 상담을 하고 있다.

 자살의 동기에 대한 물음에 그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싫어서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죽음 직전에 회생한 그가 말하는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은 평소에도 해온 터라 공감을 했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는 마음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죽음에 대해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고대 진시황도 죽음의 길이 두려워 불로초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고 현대인도 그 일에 관해서는 예외가 아니다. 또한 우리는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선고받으면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도 되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것을 알고는 삶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 한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않았다.

 조금만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거나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은 감정변화에도 다시 삶의 끈을 놓으려 했다. 그렇게 외줄 타기 곡예를 하듯 조심스럽게 상담을 이어가던 어느 날 Y씨는 내게 물었다. “센터장님은 삶에 의미가 있습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자신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무엇을 해도 재미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삶에 어떤 의미를 두고 살아갈까요? 그 말은 내게 화두처럼 다가왔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 거지?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을 해 봤지만 나 역시 삶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하루를 살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내담자 Y씨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 것은 자신도 다시 한번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그날은 상담시간 내내 삶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본인의 생각, 삶의 의미에 대한 본질 등 다소 철학적인 대화를 계속 나눴다.

 “자네 어머니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되물어 질문을 하니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아마도 우리들, 자식들을 키우는 사명감이나 보람으로 사시지 않을까요? 그렇다네, 삶의 의미란 바로 그런 거야. 거대한 꿈이나 계획이 아니라 눈앞에 닥쳐진 현실을 살아내는 작은 목표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자네는 삶의 목표가 없나? 네. 저는 제가 왜 사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는 게 재미도 없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져요. 그래서 사는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의미 찾기 게임을 했다.

 자네가 잘하는 것이 뭔가?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대로 잘하는 것이 없네요. 그렇군. 그렇다면 재미있어하는 일은 있나? 그것도 없는 것 같아요. 딱히 재밌는 일이 없어요. 그렇다면 좋아하는 것은 있나?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전에는 했던 것 같네요.” 자신이 좋아했던 일, 지금은 잊고 지냈지만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다시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이렇게 하지. 하루에 3장씩 글을 써 보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글을 써야 하나요? 저는 아무런 생각이나 구상도 없는데요.

 글의 내용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느낌, 하루를 보내면서 있었던 소소한 일상과 감상을 매일 적는 거야. 한 달이면 90장을 쓸 수 있고, 두 달이면 400페이지짜리 책이 한 권 탄생하게 되는 거지. 그다음에는 자네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이 팔리면서 자연스럽게 수입도 생기게 될 거고…. 그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눈에서 반짝하는 빛을 봤다. 그렇다면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그날 이후 그와의 상담은 계속됐고 자기가 쓴 글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며 센터장님과 약속한 게 있어서 참고 썼노라고 엄살도 부리고 으쓱하며 자랑도 함께 늘어놓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삶에 대한 의지는 점차 안정이 되기 시작했고 중단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또 다른 주문을 했다. 매일 2㎞씩 달리라고. 그리고 달리면서 느낀 느낌과 달리고 난 뒤의 기분을 메신저로 주고받는다. 그것 또한 그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자기의 일상을 어디엔가 말할 수 있고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안도감은 그를 건강한 삶으로 한발씩 옮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