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2:36 (수)
침묵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침묵의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5.25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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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퇴행이 뒤섞여 앞으로 굴러가는 게 사회적 이치다.
우리 사회에 넘치는 ‘눈물 파티’는 퇴행을 부르는 거대한 몸짓이다.
▲ 류한열 편집부국장
 최근 읽은 책의 제목. ‘( )는(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에서 괄호에 들어갈 두 글자 낱말은? 권력, 믿음, 재력, 남편, 아내 등등 무얼 넣어도 말은 되지만 ‘독서’가 답이다. 일본인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인생의 위기마다 자신의 곁에 책이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공부법 25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새겨들을 말이 많아 밑줄을 긋고 읽다 정신을 차리면 그 말이 그 말 같다. 여하튼 책을 목숨 걸고 읽은 다독가의 말이니 귀를 열고 들을 만하다. 읽은 책을 쌓아놓으면 끝이 안 보이는 독서가들은 배신하지 않는 독서로 인생을 역전했다는 말을 종종 한다. ‘꿈꾸는 다락방’을 쓴 이지성 작가는 인세만 40억 원을 받았다고 알려져 독서와 글쓰기로 꿈꾸던 꿈을 이뤘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보면 정권이 바뀐 초반에는 모든 분야가 눈부실 정도로 빛났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눈이 부실 뿐 아니라 탄성까지 터진다. 적폐 청산과 개혁 행보는 잘 짜여진 드라마 같이 재미있고 절묘한 타이밍까지 곁들여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고,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 등 대기업한테 592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첫 재판정에 섰다. 두 대통령의 얼굴이 대비되면서 영욕이 교차하는 현장을 국민들은 지켜봤다. 한 대통령은 앞으로 펼칠 꿈을 이야기 하고 다른 한 대통령은 법 앞에서 과거를 단죄받았다.

 실제 우리 사회는 진보와 퇴행이 뒤섞여 앞으로 굴러간다. 앞으로 쑥 가다가 몇 걸음 뒤로 넘어진다. 그러면서 또 앞으로 한두 걸음 떼어놓는다. 우리 사회에 넘치는 ‘눈물 파티’는 퇴행을 부르는 거대한 몸짓이다. 이번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5만 명 안팎의 추도객이 몰렸다. 현직 대통령이 참석해 추도식 의미를 하늘 끝까지 올렸다. 웬만한 정치인은 추도식장 자리에 앉아 때 아닌 나비를 구경했다. 추도식이 거대한 정치 광장으로 변한 게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순수한 추도의 자리로 돌아올 때도 됐다.

 추도는 죽은 사람을 생각해 슬퍼하는 지극한 인간다운 행위다. 사람의 감정은 세월이 흐르면 순화되고 슬픔의 자리엔 과거를 반추하는 추억이 남는다. 문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동안 추도식에 더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이번 이 추도식장에 눈물 대신 웃음과 격려, 박수소리로 가득한 이유는 9년 만의 정권교체가 만든 변화다. 이를 곱씹어 보면 지금까지 추도식장 한쪽에 정치 광장까지 펼쳐져 있었다 해도 할말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세월호가 3년 동안 바닷속에 있을 때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은 다 빠졌다. 특히 유족의 슬픔은 지금도 세월호 선체보다도 더 무겁다. 세월호 미수습자 신원이 4명 확인됐고 아직 5명은 확인도 되지 않았다. 진도 앞바다에 뿌렸던 눈물은 파도의 높이를 1m는 더 높였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여전히 슬픔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사태가 완전히 일단락 안 됐기 때문이지만 나머지는 세월호에 ‘정치적 게딱지’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슬픔이 담긴 세월호에 종교와 정치의 힘을 빼가려는 불순한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백 퍼센트 순수라고 부르기는 켕기는 구석이 있다.

 노벨문학상 받은 소설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한 토론회에서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얻은 교훈을 하나로 요약했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침묵된다”고. 그는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비극 앞에서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문학을 했다고 덧붙였다. 글을 쓰면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을 내세웠는데 이를 뒤집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심찮게 열리는 ‘눈물 파티’는 문학으로 옮겨와 다뤄야 할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비극을 보면서 간격은 크고 작을 수 있지만 그 사이를 메울 내용이 왜곡됐다면 문학이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막혔던 4대강의 물길이 다시 힘을 얻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강 보 16개 가운데 녹조 발생 우려가 큰 6개 보를 다음 달부터 상시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사업을 정책감사하라고 지시했다. 국토정책을 개발과 토건 위주로 간다면 이는 잘못됐다. 이제는 관리와 보존으로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4대강 뒷수습을 국토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로 몰고가면서 정치적 시빗거리도 증폭될 게 뻔하다. 이 또한 간격을 좁히기 위해 문학을 차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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