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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미학
사과의 미학
  • 경남매일
  • 승인 2017.05.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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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위원
 개인이나 가족, 단체나 정부, 국가 간에도 사과하고 사죄할 일들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사과할 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 그런 세상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희망일 뿐이다.

 사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출발이다. 사과의 현장은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사과할 때 우린 가장 인간다운 얼굴이 된다. 사과는 약자나 패자의 변명이 아닌 리더의 언어로 사용된다. 따라서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은 일상에서 사람들은 수시로 실수를 한다. 중요한 건 실수를 하고 난 후의 행동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바로 상대방에게 사과를 한다면 상대방도 괜찮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기만 한다면 용서해 주려던 마음마저 돌아서 버릴지도 모른다.

 홀로 살지 않는 이상,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하게 굳는 것처럼 그 어려움을 잘 해결하면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서로의 관계는 더 좋아지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 사과를 하더라도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품위가 있는 정신건강의 척도가 아니라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열등감이다. 더욱 심한 것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는 자기반성 능력의 부재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사과할 일들이 많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을 말하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고 한다. 그 아픔의 정도 때문에 가족 간에 소원해지기도 하고 애증의 관계도 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사과하기도 어려운 관계라고 하지만 가장 편안하게 사과로 모든 일이 화해되고 가까워질 수도 있다.

 사회생활에서 개인 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시빗거리 중에 으뜸인 것은 공공장소나 건널목 등에서 휴대폰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일이 종종 있다. 도로에서도 끼어들기는 예사고 불평이라도 하면 사과는 고사하고 보복운전도 서슴지 않으면서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현실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훌륭한 사과는 첫째, 내가 행한 행위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한다는 마음을 언어나 문자로 표현한다. 자신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돼 창피함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가 분발해서 살아야 함을 알려주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신호다.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창피하거나 부끄러움 없이 살기보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둘째, 내 잘못을 인정한다. 이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나의 실수, 판단 부족,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 등으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라고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과는 사과한 사람의 이미지를 끌어올려 주는 전화위복 효과를 내지만, 또 다른 사과는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불쏘시개 구실을 하므로 진정성이 요구된다.

 셋째, 감동적인 보상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 이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복구의 의미이다. 적절한 보상이 너무 미약해도 너무 과해도 모욕감이라는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세 번째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문제 해결이 잘 안 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1900년경부터 1970년대까지 원주민의 복지와 이들의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로의 동화를 이유로 원주민 자녀들을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종교시설 또는 사회복지 시설로 수용하거나 입양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원주민 아이들을 그들의 가정에서 유리시키는 것으로, 이런 식으로 가정에서 강제로 격리된 원주민들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고 부른다. 1980년대 후반 원주민들의 문제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5년 노동당 정부가 과거 원주민 자녀들을 그들의 가정으로부터 반강제로 격리시킨 정책의 비 인도성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존 하워드(John Winston Howard) 총리의 집권 후인 1997년 원주민 가정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황당한 생각을 실행한 데 대한 반성의 뜻으로 ‘사과의 날(National Sorry Day)’ 제정을 권고하는 최종 보고서가 발표됐다. 1998년 5월 26일 ‘사죄의 날’ 행사가 오스트레일리아 전국에서 개최됐다.

 오늘도 국민들은 잘못을 저지른 위정자들의 진심이 담긴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사과에 대한 수용은 국민들의 영역이다. 사과는 수용되거나 거부될 수 있지만, 유일한 선택 사항은 아니다. 사과를 하지 않거나 어떤 식으로든 불충분한 사과일 때 역사의 심판대에서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사과는 먼저 자신에게 해야 한다. 마음에 무거운 짐을 안고 국민들을 이용하는 행위는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를 들고 수영을 하는 것과 같다. 가벼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기쁨이 넘칠 수 있다. 마음의 부담은 나를 무겁게 하고 복잡하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잘하겠습니다’ 진심이 담긴 이 말은 아마 놀라운 기적을 불러올 것이다. 사과는 상대가 됐다고 해야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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