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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 바람
웰 다잉 바람
  • 경남매일
  • 승인 2017.05.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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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요즘 웰 다잉(Well Dying : 잘 죽기)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웰 리빙(Well Living : 잘 살기) 서적이 아닌 잘 죽기 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웰 다잉 신드롬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잘살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잘 죽기를 미리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모순 같기도 하다. 웰 다잉은 존엄한 죽음으로 인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인간 의지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서점가에서 부는 웰 다잉 바람의 진원지는 38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신경외과 의사인 폴 칼라니티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에세이다. 의사이면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레지던트 막바지에 폐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쓴 글이어서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서점에서 한 권 사서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고달픈 삶을 마감하는 순간 과연 자신의 죽음이 의미 있는 생의 마무리가 될지 성찰해 볼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늘 아래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 철칙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한 채 살아간다. 죽음이 목전에 달한 순간까지도 왜 죽어야 하는지 두려움에 떨면서 숨을 거둔다. 웰 다잉 바람은 고령사회가 우리보다 일찍 도래한 일본에서 불기 시작했다. 이미 일본 인구의 23.5%가 노인으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임종 대비책인 슈카츠(終活 : 임종을 준비하는 활동)가 실버산업으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그들은 만약을 대비해 간병, 의료, 질병, 종말 의료, 장례준비, 유품정리, 재산상속 등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준비성이 철저한 일본인 특유의 사고방식이라고 폄하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 현실적인 삶에 매몰돼 사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엔 염복과 자신이 묻힐 묘지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처럼 인생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기 위한 웰 다잉 바람은 죽음이 아닌 삶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 여성 작가 로즌솔이 난소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혼자 남을 남편을 걱정한 나머지 ‘남편의 두 번째 아내를 찾습니다’라는 남편구혼 칼럼을 NYT에 기고했다. 그리고 영화 같은 사랑을 남긴 채 하늘나라로 떠나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세계 호스피스운동의 선구자로서 ‘인생 수업’의 저자인 퀴블러 로스는 42세의 나이에 자신도 암에 걸렸다. 암 병동에서 시한부 삶을 살면서 다른 환자들에게 죽음에 당당히 맞서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고 외쳤다. 이 모두가 일본인의 슈카츠 못지않은 웰 다잉의 용기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염복을 입고 관속에 들어가 죽음 연습을 체험하는 것을 보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생명의 유한성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웰 다잉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자서전도 써보고, 나이 들어서 젊은이들에게 ‘꼰대’라는 소릴 듣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면서 사고방식도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나는 연장자라서 보수다. 너희들은 젊으니 진보라지만 우리들의 경륜에는 미치지 못한다. 젊은것들이 뭘 안다고 까불어. 대통령 후보도 내가 시키는 대로 찍어”라며 젊은이들을 윽박지르면 개저씨와 꼰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습관처럼 굳어진 권위의식과 고집불통은 윌 다잉에도 걸림돌이 된다.

 요즘 중장년층에서도 답답한 현실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답을 찾기 위해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압축 성장을 위해 쉼 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인의 고달팠던 삶. 빨리빨리 덕분에 먹고 사는 걱정에서 해방되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됐지만 빈부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허탈해하고 있다. 이제 바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일상에 지친 삶에 위로가 될 웰 다잉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를 가져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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