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2:18 (수)
지금 감동이 5년 뒤에도 이어지길
지금 감동이 5년 뒤에도 이어지길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05.21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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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지지율 급상승 실패한 정치사 마침표를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얼마 전 초등학생 책가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쪼그려 앉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사인을 받을 공책을 찾느라 아이가 책가방을 뒤지자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서 적지 않은 국민들이 우리도 이런 대통령을 갖게 됐다며 환호했다. 식판을 든 청와대 구내식당에서의 문 대통령, 출근길에서 시민들과 셀카 사진을 찍는 문 대통령까지만 해도 그저 그랬다. 일종의 서민 코스프레 정도로 격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쪼그려 앉은 대통령에게서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진정성이 확 느껴졌다.

 며칠 뒤 문 대통령은 5ㆍ18기념식에서 유족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13분짜리 과격한 기념사를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읽어 내려갔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하는 대목에서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빼놓고야 말았다. 어떤 이는 “이런 적이 있었나. 이게 뭐라고 또 목이 메이나. 우리는 그동안 어떤 세상을 살았길래 이렇게 울어야 하나”라고 글을 적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저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입었던 등산복이 유명세를 타고 안경테와 양복, 구두까지 열풍이 일고 있다. 파란색 계열을 선호하는 문 대통령의 패션이 주목받으면서 신조어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 끝 자를 애칭처럼 ‘이니’로 바꾸고 민주당의 파란색과 합해 ‘이니블루’로 부른다. 커피를 즐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블렌딩 방식인 ‘문재인 블렌드’도 붐을 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인기는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까지 건너갔다. 중국 SNS 웨이보 문재인 대통령의 팔로워 수는 5만 명을 넘었다. 문 대통령 최대 팬클럽인 ‘젠틀재인’보다 많다. 잘생긴 외모와 소탈한 일상, 한중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문재인 현상을 두고 어떤 이는 아이돌 수준의 강력한 팬덤 현상으로 평가한다.

 그의 말과 행동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50만 원을 주던 육아휴직수당을 100만 원으로 올린 그의 공약은 벌써부터 젊은 주부들의 육아 휴직 욕구에 불을 지르고 있다. 100만 원 정도면 육아휴직을 해볼 만 하다는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의 다른 공약에도 관심이 옮겨붙었다. 그의 공약에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공약을 새삼 다시 챙겨보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정권출범 초기 9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국민적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YS, DJ 이후의 대통령은 정권출범의 환희가 채 식기도 전에 반대 진영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출발은 전임 세 대통령과는 다르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이라도 덮어놓고 비판하는 모습은 아직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세력을 적폐세력으로 몰고 국민을 분열시키지 않을까 하던 우려도 현재로서는 기우에 불과해 보인다.

 문 대통령의 모습은 분명 이전 대통령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인간적 면모가 크게 돋보인다.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힘든 소탈함과 진정성이 무엇보다 크게 다가온다. 청와대 담장에 갇혀 ‘감옥도 이런 감옥이 없다’는 전임자들의 푸념도 없을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문재인 현상은 누적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줬으면 하는 국민적 기대감의 표현일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갈증도 있을 것이다.

 한때 역대 대통령의 반대로만 하면 적어도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 적이 있다. 과거 대통령,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교훈을 얻었을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어떻게 하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 것이다. 대통령 불행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주기를 고대한다. 지금의 감동이 퇴임 때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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