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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나는 소고기, 고사리
산에서 나는 소고기, 고사리
  • 경남매일
  • 승인 2017.05.1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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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위원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산나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산나물은 비타민의 보물창고이다. 겨울철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고 다가올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 산나물만 한 것이 없다. 산채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나물로는 고사리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고사리를 많이 먹었는데 잔칫상이나 제사상에는 반드시 삼색 나물 중의 하나인 갈색 나물로 반드시 올라간다. 고사리는 번식력이 하도 강해서 아무리 송두리째 꺾어도 일주일만 지나면 끝끝내 꼿꼿이 새순들을 피운다. 이처럼 퍽이나 끈질기고 억세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이 종자를 남기니, 제사상에 고사리를 올리는 것은 이처럼 후사를 기리게 해 달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묵나물 중의 하나인 고사리는 봄철에 연한 새싹을 수확해 먹기도 하지만 건조시켜 저장했다가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시기에 소비량이 많다.

 고사리는 1억 4천500만 년 동안 버텨온 식물이다. 전 세계에 큰 군락을 만들어 자생하는 생활력이 왕성한 식물로서, 아시아지역에서는 매우 오래전부터 식용돼 왔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백이ㆍ숙제가 고사리를 먹고 연명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고사리를 소재로 한 우리의 고전문학 작품으로는 성삼문과 주의식의 시조가 유명하다. 이것은 백이ㆍ숙제의 고사와 관련된 시조로, 성삼문의 작품은 백이ㆍ숙제가 고사리를 꺾어 먹은 것을 탓하는 내용으로 자신의 높은 절의를 과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주의식의 작품은 성삼문과는 달리 백이ㆍ숙제가 고사리를 캔 것을 두둔하고 있다.

 고사리는 종근에서 번식을 하는데 주위에 풀을 이길 정도로 활착력과 번식력이 좋다.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고 있는 고사리는 대략 벚꽃이 지고 나면 쑥쑥 자라고,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고사리는 차가운 성질을 띠고 있어 해열제로 쓰인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에, 칼슘과 석회질이 대량 함유돼 있어 골다공증 예방과 골격발달에 효과가 있다. 비타민A 성분이 풍부해 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고사리는 100g당 39㎉ 저열량 식품으로 다이어트에도 좋고, 철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빈혈 예방과 각종 비타민이 들어 있어 피부미용에도 좋다고 한다.

 어릴 때 매년 봄이 되면 어머니와 함께 고사리 꺾으러 다녔던 날들이 생각난다. 이럴 땐 덤불처럼 수북이 너부러져 있는 지난해 고사리 덤불을 얼른 찾는 것이 지름길이다. 나름 고사리가 자라는 명당자리를 어머니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에도 고사리와 같은 산나물이나 버섯 등이 몰려있는 곳을 알고 있는 어르신들은 다른 사람한테는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사리를 채취할 수 있는 때를 잘 맞춰 가야 먼저 채취할 수 있다.

 고사리는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가까이에도 가족, 친척, 이웃이 함께 지내고 있다. 이웃보다 더 많은 마을 정도라면 고사리밭 수준이다. 한 뼘 남짓한 어린 고사리가 다소곳이 서 있는 것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탱탱하게 물이 오른 줄기를 ‘똑’ 하고 꺾으면 남은 그루터기의 다친 자리를 아물게 하는 진물이 흥건하다. 도시락으로 준비한 삶은 감자로 점심 요기를 하고 종일 고사리를 꺾다 보면 허리가 아프다 못해 내 허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요새 와서는 어린것들을 파다 심거나 종묘를 사다가 공터나 메마른 산자락의 밭뙈기에 줄줄이 심어 재배하고 있으니 야생 고사리하고는 차이가 난다.

 얼마 전 영국사 뒷산을 올라갔다. 꼭 고사리를 꺾으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산자락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수풀 숲을 헤집고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그래도 비가 오고 난 후라 여기저기에서 반가운 고사리를 볼 수 있었다.

 천태산의 하늘과 숲은 푸르름으로 눈부시고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도 정겨웠다. 거대한 바람의 물결에는 바람이 다니는 길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은 묵직한 윙윙 소리를 내면서 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숲속의 다양한 나무와 풀들에게 세상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주고, 유연성 운동도 시켜주는 것 같다. 바람의 소리를 듣고 즐기면서 바람처럼 살아가라고.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마다 바람이 전하는 아카시아 향기가 영혼까지 황홀하게 한다.

 고사리를 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허리를 굽혀 모든 시선을 고사리 눈높이로 맞추고 보니 고사리 가족들이 미어캣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한 뼘도 안 자란 고사리들의 야들야들한 허리를 똑똑 꺾으면 손맛은 일품이지만 왠지 자연의 파괴자가 된 기분마저 든다.

 처음 고사리를 꺾어 본다는 도반은 마냥 신기하고 즐거워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비만의 뱃살이 접혀 허리 숙이기가 만만치 않은 나에게는 분명 무리인 것 같다.

 언제나 깨어 있어야 고사리를 꺾을 수 있다. 집중해야 한다. 마음을 다잡지 않고 얼핏 딴생각을 하면 번번이 빤히 눈앞에 두고도 자칫 놓치기 일쑤다. 내년에는 제대로 시간을 내서 고사리를 한 아름 꺾어 삶고 말려서 제대로 된 산에서 나는 소고기, 고사리나물 요리도 먹고 심신을 재충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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