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1:54 (목)
5월은 잔인한 달인가
5월은 잔인한 달인가
  • 정영애
  • 승인 2017.05.10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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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아름다운 장미와 라일락 향기가 천지를 진동한다. 사랑과 정열의 장미, 첫사랑과 젊은 날의 추억을 상징하는 라일락의 만개로 봄꽃의 향연이 절정을 이룬다. 금년 5월은 부처님 오신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대선일, 스승의 날 등 휴일이 겹쳐 월초부터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인파로 공항과 KTX역이 붐빈 가운데 열띤 대선전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처럼 휴일과 기념일이 많다는 것은 돈의 씀씀이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특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부담스럽다. 애들 맘에 드는 장난감 하나가 20만 원이고, 부모와 처가 양가 부모님 용돈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선물 하나 사서 보내면 만족하셨는데 요즘은 현금봉투가 최고 효도선물이 됐다. 각자 흩어져 사는 핵가족 시대를 맞아 어버이날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봉투도 드리고 식사도 대접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경로당에 모여 하시는 말을 들어보면 누구 집 아들딸은 20만 원씩 보냈고, 어떤 집 딸은 잘 살아 매달 용돈도 30만 원 씩 보내면서 50만 원에 보신제까지 한재 지어 보냈다는 둥 자식들의 살림살이가 고만고만한 노인들은 그 소리에 기가 팍 죽고 만다.

 한편, 부모님께 평소 매달 용돈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해 어버이날이 오면 큰맘 먹고 두둑한 봉투라도 보내고 싶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가. 형제가 많다보면 이런 때 잘사는 형제와 못사는 형제간에 갈등이 생긴다. 그래서 고향 부모와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자식들이 많다고 한다. 주변의 지인들 중 퇴직해 경로당 신세가 된 분들의 애기를 들어보면 매달 아들이나 딸로부터 얼마간이라도 용돈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짐작컨대 20% 미만인 것 같다.

 그런데 또 하나 골칫거리는 전에 주로 겨울철에 했던 결혼식을 4~5월 봄철에 많이 하고 있어 이 또한 큰 부담이다.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 이제 우리가계를 압박하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결혼식 등 경조사가 몇 차례가 겹치면 그 달은 완전 적자가계부를 써야한다. 연말은 그래도 보너스라도 나와 벌충이 되는데 5월엔 완전히 생돈이 나가니 죽을 맛이다. 흔히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영국시인 토마스 엘리엇이 쓴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에서 그렇게 노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쟁이에겐 4월보다 5월이 더 잔인한 달(?))인 것 같다. 나는 남매를 두고 있지만 아직 미혼이라 부모에 의지해 공부하는 형편이라 부담감은 덜하겠지만 머잖아 앞서 언급한 일들로 힘들 것 같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잘 살아야 내가 만년에 호강(?)을 누릴 텐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예 기대를 안 하는 게 맘 편할 것 같다.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는 팍팍한 세상인심이 우리 아인들 그리 안하리란 보장이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높은 육아비와 사교육비 부담으로 결혼은 하되 자식은 갖지 않겠다는 젊은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스럽다. 5포세대에서 N포세대로 방황하는 청년백수 100만 시대를 맞아 꿈을 잃은 청춘들이 너무 안타깝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왜 하필 5월에 이렇게 돈 쓸 날을 몰아서 정했는지 모르겠다. 살기가 넉넉하다면야 몰려있든 분산돼 있든 상관없겠지만, 이런 날들을 5월은 어린이날 , 8월은 어버이날, 10월은 스승의 날로 정한다면 지출이 분산돼 부담이 가볍지 않을까 싶다. 어렵겠지만 평소 매달 얼마간의 용돈을 부모님께 드리면 이런 기념일엔 작은 성의만 표해도 되고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장미 공원에 만개한 가지각색의 장미가 방금 내린 비로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있다. 마치 장미꽃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가시처럼 5월의 화려함에 가려진 월급쟁이 자식들의 숨겨진 가슴앓이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제 우리사회도 고교를 졸업하든, 대학을 졸업 하든,자기적성에 맞는 직장에 취직해서 5월 어버이날이 부담스런 날로 느껴지지 않은 때가 왔으면 좋겠다. 두툼한 효자봉투를 받아들고 우리자식 최고라며 주름진 얼굴 활짝 펴고 웃으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무리 효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민족의 정서 속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올 봄 어버이날에 다소 서운했던 부모님들은 다음 해 좋은 소식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5월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화려한 봄꽃이 절정을 이루는 5월. 답답하고 서운한 맘을 봄나들이로 훌훌 털어 버리고 즐거운 날들로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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