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0:23 (수)
유배지에서 온 편지 ②
유배지에서 온 편지 ②
  • 이애순
  • 승인 2017.04.24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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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순 수필가
 그 편지를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답장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갔다. 편지를 받고 한 달이 지나서야 답장을 했다.

 나는 학생 같은 자식을 둔 할매고, 편지도 재미없을 거라고. 편지를 쓰다보면 쓸데없는 설교를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학생이 편지대상을 잘못 골랐다며 실망할 거라고.

 편지를 보내고 나니 며칠 만에 답장이 왔다. 편지가 가고 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아마도 받은 즉시 답장을 썼을듯 싶다. 그만큼 반갑고, 기다렸다는 뜻일 게다.

 답장을 주셔서 감사하고, 어머니 같아서 좋다고. 절대 실망하는 일 없을 거라고.

 첫 번째 편지보다 성큼 가까워진 마음을 담아 답장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생활도 알려왔다.

 그곳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으며, 과거 자신이 말 안 듣고 학교 안다니고 사고치고, 부모님 말 안 들어 지금은 후회 많이 하고 있고,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지금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셔 안 계시지만 형제들과는 잘 지내고 있다고. 자신의 신변얘기도 털어 놓았다.

 어머니라는 호칭을 붙이며, 사근사근하고 차분한 어조의 답장이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장을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 속의 학생은 의젓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참으로 진실하고 밝았다.

 이 청년을 배반한 건 나다. 공교롭게도 편지 받은 날 평소에 마음을 의지하던 종교인 한 분을 만났는데 말끝에 편지 얘기를 꺼냈다. 격려의 말이라도 해주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좋은 말로 편지를 끊으라’고 말했다.

 값싼 동정으로 의지하게 하면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것까지 감안해서 감당할 수 있으면 하라는 요지다.

 그 말에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잘했다 하실 줄 알았는데 나의 얕은 생각과는 달리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직언을 하신 것 같다.

 두 번째 받은 편지를 꺼내 반복해 읽으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편지 속에 보이는 학생의 기쁨에 찬 얼굴, 기대에 찬 그의 마음을 어떻게 외면해야 할지. 미안한 마음과 그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괴로웠다. 이러려고 했으면 시작을 하지 말걸. 나의 경솔함을 탓했다.

 결국, 사정이 생겨 더 이상 편지할 수 없다고 졸렬한 답장을 보냈다. 그러니 더 이상 답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없다. 이별 통보를 받고 아무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연히 떠나는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섭섭함 마저 든다. 이 마음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대체 그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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