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정책, 주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
저출산정책, 주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7.04.23 2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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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지금까지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도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 있다. 저출산 문제다. 그동안 정부정책은 출산장려금과 보육수당의 지급, 누리교육과정 도입, 공공보육기관 및 돌봄서비스 확대, 출산휴가 및 육아 휴가 확대, 신혼부부에 대한 주택 우선 공급,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직업교육 확대 등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결혼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지자체가 주는 출산축하금과 선물, 출산휴가 급여인상, 난임 임산부 지원확대, 임신진료비 본인 부담 축소 등은 덤이다. 이런 저출산 정책은 모두 ‘주는데’ 맞춰져 있다. 방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이 정책들이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아이를 낳을 유인책으로는 매우 미흡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데 대한 비용과 노력, 기회비용에 비해 이런 지원책들이 매력이 매우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20여 년간 노력해도 안 됐다면 더 이상 기존 정책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이런 정책들이 매력을 가지려면 아마도 예산이 지금의 몇 배는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 나올 곳은 뻔한데 저출산에만 예산을 퍼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주는 정책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를테면 주더라도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혹자는 출산의 기쁨을 알 수 있도록 첫 아이부터 출산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키우는 재미와 보람을 알게 되면 둘째 아이도 낳게 된다는 논리다. 늘어날 예산이 걸리기는 하나 한 번쯤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논의 이전에 주는 정책이 과연 올바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출산이 의무는 아니다. 개인의 선택문제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저출산을 개인의 선택문제로 놔두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 봐야 한다. 숱한 논란이 있겠지만 일단 결혼을 했으면 1자녀는 강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결혼 후 임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일정 기간 출산을 하지 않는다면 각종 복지혜택을 줄이는 식이다. 그리고 첫째 자녀에게서 아낀 예산을 둘째 이상 자녀에게는 놀랄만한 수준의 지원을 하는 것이다.

 출산은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의무성격이 없지 않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가산세를 물리고 징벌적 조치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담론제기부터 해야 한다. 이런 담론제기는 정치권이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표 떨어지기 십상인 이 문제를 정치권에 바라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간이 꺼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지탄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닥치는데 곤란한 문제라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이런 정책은 모두 젊은 세대에게 부담이 되는 만큼 기성세대의 고통 분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산을 가로막는 장벽 중의 하나가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부족한 점이다. 유아 학대가 심심찮게 터지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늘어나는 노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에서 자라난 아이가 상대적으로 심성이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경로당이나 공공탁아소에 자질과 소양을 갖춘 노인들을 배치해 아이들을 맡아 기르게 하고 이들에게 수당을 지급한다면 육아와 노인 일자리 문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될 수 있다.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갈 초고령사회 대책은 저출산을 극복하지 못하면 백약이 소용없다.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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