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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셀프 구조조정' 잘 될까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셀프 구조조정' 잘 될까
  • 연합뉴스
  • 승인 2017.04.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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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산업은행 자회사…'내 자식' 돼버린 대우조선
"구조조정 소극적으로 하다 7조1천억원 투입"
"'공적자금 손실 무조건 안 된다'는 도그마 버려야 매각 성공"

채무 재조정에 성공한 대우조선해양[042660]이 신규자금 2조9천억원을 지원받아 급한 불을 끄게 됐다.

유동성 위기를 넘긴 대우조선은 직원 수를 줄이고, 해양플랜트 등 경쟁력 없는 사업부문을 정리해 매출액의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1년 반 새 대우조선에 7조1천억원 투입을 결정한 정부와 산업은행은 회사를 단단하게 만들어 내년 말부터 본격적인 '새 주인 찾기'에 나서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 부실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이면서 구조조정도 주도해온 산업은행이 이번에도 '제 살 도려내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우조선에 또 혈세가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주인 없이 17년, 산업은행이 관리
대우조선은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한 기업이다. 2000년 산업은행 자회사가 됐다.

자산 8조원·매출액 13조원(작년 말 기준)인 대형 기업이 주인 없이 국책은행 관리를 17년간이나 받았다.

대우조선이 주인을 찾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매각이 추진됐으나 정치권과 노조의 반대로 기회를 놓쳤고, 2008년엔 6조3천억원을 써낸 한화[000880]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매각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한화그룹이 매각대금 분납을 요청한 것을 산업은행이 거부해 매각이 무산됐다.

당시 산은이 매각을 주저했던 것은 책임 문제 때문이었다. 추후 '헐값 매각'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해 열린 국회의 대우조선 청문회에서 정용석 산은 부행장은 "(매각대금을 분납하게 해달라는) 한화그룹의 조건에 인수 경쟁자였던 포스코[005490] 컨소시엄이 형평성·공정성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인위적으로 처리하면 산은 실무자들이 사후 책임을 질 수 있어 매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는 동안 대우조선 사장은 물론 사외이사 선임까지 정부와 정치권이 관여하면서 회사의 실상은 곪을 대로 곪은 후에야 드러나게 됐다.

대우조선의 전임 사장인 고재호, 남상태 씨는 분식회계로 손실을 감춘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주주로서 관리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의 전 수장 3명(민유성·강만수·홍기택)도 대우조선 관련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결국, 산업은행은 관리 부실로 망가진 기업에 2015년 10월 4조2천억원, 올해 4월 2조9천억원 등 7조1천억원을 투입해 '셀프 구조조정'을 하게 됐다.'

◇ 부실 책임 당사자가 구조조정도…이해 상충 여전
2015년 대우조선 지원 결정 이후 산은은 국회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자회사의 방만 경영이 없도록 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조직 혁신안을 대대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에 시장이 보내는 의심의 눈길은 여전하다.

부실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구조조정도 한다는 이해 상충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산은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은 오너에게 경영 책임을 물어 지분을 대폭 감자한 뒤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영권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STX조선해양, 현대상선[011200], 동부제출 구조조정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오너가 산은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진해운은 단칼에 법정관리에 보내고 대우조선은 살려둔 이유를 대주주가 산은이냐, 아니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 등 대우조선 회사채 투자자와 시중은행이 산은에 추가 감자를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산은이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산은은 부실 책임이 있는 대우조선 지분을 이미 전액 감자 후 소각했고, 국책은행인 산은의 추가 감자로 인한 손실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게 되는 것이라며 감자를 거부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산은이 대주주 책임 부담 때문에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금융위원회도 감독기관이면서 산은과 같은 배를 탄 입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대주주인 산은이 자회사를 스스로를 구조조정하는 형태라 자꾸만 회사 전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전체를 살리면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물론 대내외 경제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에 대우조선을 굿 컴퍼니·배드 컴퍼니로 나눠 기술력 있는 부분만 살린 뒤 나머지는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국민연금 방패로 산은 책임문제 희석돼"
산은과 정부가 만든 이번 구조조정 방안이 최선은 아니지만,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대우조선 관리 실패를 더 명확히 묻고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채무 재조정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주목받으면서 산은의 책임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대우조선에 국민 세금을 7조1천억원이나 투입하게 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며,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며 "앞으로 대우조선이 부실화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이라는 방향을 지금이라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으면 또 공적자금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철저한 관리를 통해 대우조선 상황을 개선한 뒤 필요한 것은 산은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이다.

정부와 산은도 내년 말부터 M&A(인수·합병)를 통해 대우조선의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성태윤 교수는 "정부 지원을 받은 대우조선 입장에선 회생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수주를 해야 하고, 이에 따라 저가 수주를 하다 보면 조선업 전체가 어렵게 된다"며 "대우조선 해양의 문제가 결국 산업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과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산은과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 원칙'에 매여 또다시 매각 시기를 놓치는 일이다.

만 17년 넘게 키운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에 "지금까지 들인 돈은 모두 회수해야 한다"는 원칙에 매달리면 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실기업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매몰 비용으로 볼 수 있으므로 '한 푼도 손실을 봐선 안 된다'는 도그마에서 이젠 벗어나야 한다"며 "투명한 절차를 거쳐서 팔았다면 헐값 매각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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