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41 (금)
헬 조선 한국
헬 조선 한국
  • 이광수
  • 승인 2017.04.20 2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광수 소설가
 요즘 한국의 청년세대가 겪는 좌절과 불만을 시니컬하게 표현하는 ‘헬 조선’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헬 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이다. “우리 사회가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다. 지옥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조적, 자학적인 표현으로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하는 조언이나 충고를 비꼬는 ‘노오력’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상통한다. 헬 조선은 지난 2014년 모 방송 드라마 <정도전>이 방영될 때 디시 인사이드 ‘정도전 갤러리’에서 <정도전> 팬들을 놀리기 위해서 사용되다가 유명해졌다고 한다. 실업문제로 불만이 커진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불만의 표출이다. 헬 조선은 금수저, 흙수저로 양분된 청년세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조차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제 못난 탓으로 돌리고 있는 시각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SNS를 통해 더욱 많이 노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겪었던 시절을 상기하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지나친 비관과 불만의 늪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지만, 100만 청년 백수에 36만 직포 세대에겐 마이동풍이다. 이어령 박사는 헬 조선을 떠나 이민 가고 싶은 곳인 서구 선진국들도 천국은 아니며, 현재의 취업난과 양극화는 정보기술의 결과로 나타난 ‘범세계적 공통현상’이라고 진단하면서 남 탓만 하면 ‘영원한 지옥’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부정적 평가로 언급된 빅데이터 상의 일련의 연관용어들을 보면 다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열정 페이, 스펙, 위킹 푸어, 하우스 푸어, 청년 실업, 비정규직, 비계인, 일용직, 최저임금, N포세대, 사회 양극화, 근로 빈곤층, 계층 간의 단절 등과 같은 용어의 범람을 상기하면 그들의 안일과 노력 부족을 탓할 수만 없을 것 같다. 사회 구조적으로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어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없는 계층단절의 벽이 공고화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직업 선택에도 5060세대는 20대에 공직이나 교직을 결코 바람직한 장래가 보장된 천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산적이며 역동적인 기업 쪽을 선호했다. 그땐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커서 자신들의 미래는 기업 쪽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 시행된 9급 공채 시험에 30만 명이 응시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얼마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공시생 50만 시대는 한국 청년의 슬픈 자화상이다.

 앞서 공시 열풍을 반영하듯 고시오패스, 도서관 미어캣, 원시인 같은 신조어가 SNS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공직이 단순히 자신의 장래직업이 아니라 ‘청춘의 꿈’으로 등장하고 있다. 공무원이 밥벌이 직업이 아닌 청춘의 꿈이요 희망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일본의 사토리 세대보다 더 비참한 한국 청년 문제의 실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본도 한때 20년 장기불황으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성공으로 대졸 95%가 기업에 취업할 수 있게 됐으며 일손부족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청년들이 목을 매는 공직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민의 심부름꾼이다. 불확실성이 커진 세상에 미래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보내려는 보편적 안주 심리를 탓하려는 의도는 없다. 공직은 생산적인 직업이 아니며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청춘의 꿈을 이런 직업에 건다는 것은 젊음이 너무 아깝고 값싸게 느껴진다. 공직이 청춘의 꿈이 된 한국호의 미래가 걱정스럽기에 하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고시열병으로 생겨난 용어인 고시오패스는 고시, 소시오패스의 합성어이다. 심리학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하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인격장애 진단의 기준으로 보면 공통점이 있다. 고시오패스가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 공무원 시험에 계속 응시해 낙마하면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공격적, 비관적 성향을 보이다가 반사회적 행동(범죄, 자살)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고시오패스가 사이코패스와 같은 행동행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20대 질환자 가운데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강박 장애자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통계수치는 바로 고시오패스의 폐단을 적시하는 증거이다. 이미 문제점이 나왔으니 해결 방안은 그 속에 있다. 망국병인 공시 고시 열풍을 생산적인 취업 열풍으로 정상화시키는 범정부적 대책강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헬 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SNS에서 사라질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 설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