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ㆍ희극, 그것은 관점의 문제다
비극ㆍ희극, 그것은 관점의 문제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4.20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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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비극ㆍ희극, 그것은 관점의 문제다.’ 로런 그로프의 소설 ‘운명과 분노’에 나오는 괜찮은 대사다. 우리 삶은 비극에 눈을 대면 한없이 서글픈 이야기로 채워지고 희극 쪽에 손을 내밀면 그런대로 재밌는 일들로 꾸며진다. 이 관점은 무섭게도 고정된 채 좀체 변하지 않은 괴물이다. 세익스피어 4대 비극이 무언지는 아는데 5대 희극을 말하라면 잘 모른다. 사람은 인생길을 가다 비극의 구렁텅이를 만나 허우적대다가 빛나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사회의 엄청난 비극을 안고 3년 동안 깊은 바다에 누워있던 세월호가 육지에 올라와 기대어 누웠다. 많은 사람들은 처참한 몰골을 보면서 오랜 세월 비극적 슬픔이 현실의 비극으로 현현하는 굿판에 다시 섰다. 비극의 속성은 모질게 질기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거대한 ‘광장’을 만든다. 그 광장은 그 어떤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생각들을 녹여 하나의 결정체를 만드는 용광로 같다. 간혹 삐딱한 생각을 하더라도 그 생각은 그 용광로에 녹아 스르르 사라질 뿐이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빨려 들던 날부터 우리 사회는 ‘세월호앓이’를 겪었다. 세월호를 향해 삐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이단아일 뿐이다. 세월호가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가던 날, 우리도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국가와 일부 가해자를 빼고는 모두 피해자였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오는 날, 우리는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봤는가. 그렇지 않다. 다시 비극의 첫 막이 올랐다. 세월호는 물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는데, 진실은 여전히 차가운 물 속에 누워있다.

 비극적 이야기가 너무 길면 연극의 막이 내려도 카타르시스를 맛보기가 힘들다. 비극에서 희망의 끄트머리를 찾지 못해 희망을 끌어당길 수 없다. 비극을 보고 비극으로만 끝나는 비극적 교훈만 잡기 십상이다. 세월호는 사실과 문학, 예술로 기록돼야 하고 진실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진실을 쓰려면 또 다른 3년이 필요할 지 모른다. 세월호와의 긴 악연을 누가 만들고 있나. 세월호 인양이 늦어진 탓이 크지만, 세월호의 비극을 길게 끌고 가려는 ‘숨은 힘’이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꾼들이 이 카드를 계속 돌린다. 이 카드 한 장의 위력은 여전히 세다.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 말과 진실을 가리는 침묵이 있다. 이는 한 골을 파고 흐르는 비극의 격류 앞에 무력할 뿐이다.

 광장에서 타올랐던 촛불은 대통령 파면을 부르는 힘이 됐고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됐다. 촛불이 연일 타오르면서 한국 정치는 광야를 넘어 새로운 푯대를 향해 나아가게 됐다. 촛불의 의미는 관점에 따라 밝은 빛이 되고, 그림자가 일렁이는 흐릿한 불빛일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촛불은 초롱초롱한 빛이다. 촛불이 위세를 떨치며 전국을 휘감을 때 꽉 막힌 정국에 길이 열렸다. 촛불은 막강한 역할을 하고 광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초에서 흐른 촛농으로 다시 불을 피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촛불 시민을 주체로 세워 정치개혁을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점을 촛불의 힘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의 힘을 다시 일으켜 정치의 힘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다. 촛불은 현대 정치사의 비극을 불사르는 상징이다. 그 비극이 종착점으로 가는데 다시 비극을 상영하려는 노림수에 자괴감이 앞선다.

 세월호와 촛불은 우리 사회와 정치를 모두 담고 있는 거대한 주제다. 앞으로 이 비극적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비극을 딛고 희극의 무대를 볼 수 있다. 이 주제를 특정 세력이 독점해서 편향한 물줄기와 불빛을 뿜어내면 더 큰 비극을 새기는 꼴이 된다. 이제 더 너른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미를 찾는 거룩한 작업은 목소리 큰 사람만이 주도할 수 없다. 진실을 가리는 침묵은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비극을 부른다. 비극과 희극이 관점의 문제라면 목소리 큰 자와 침묵하는 자는 무대에서 제대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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