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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만든 새 양반과 상놈
시대가 만든 새 양반과 상놈
  • 이태균
  • 승인 2017.04.10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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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균 칼럼니스트
 지금 이 시대에 양반과 상놈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너무 낡은 생각이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양반과 상놈은 영원한 우리네 삶에서 화두가 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조시대에는 아버지 핏줄 하나만으로 입에 풀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한 가문도 양반이라고 큰소리치며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며 살았다.

 양반은 끼니를 굶주려 배가 고파도 위엄있는 당당한 모습을 흩트리지 않았지만, 되돌아보면 이러한 것이 얼마나 우스운 꼴불견인가. 더욱이 혼사를 앞두고 배우자와 며느리나 사윗감을 선택할 때도 가문의 핏줄을 가장 중시해 당사자의 인품과 살림살이보다는 양반 가문이라는 핏줄 선택이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곤 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사회가 크게 변한 오늘날에 있어서 양반과 상놈은 과연 사라지고 말았는가. 부모님의 핏줄에 따른 양반과 상놈은 사라진 지 오래 됐으나, 시대가 또 다른 양반과 상놈을 만들었으니 상놈은 이 시대에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고 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다음에 열거하는 네 가지 양반과 상놈은 이 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해 양반 축에 끼이지 못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한다.

 첫째, 누가 뭐래도 이 시대는 물질 만능 사회로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 비해 상대적 양반이고, 물질로 인생의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무성할 정도로 물질과 경제력이 그 사람의 가치까지 평가하기도 한다. 큰 죄를 지어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소위 전관예우를 받고있는 비싼 변호사를 이용하면 처벌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이긴 하나, 삶이 팍팍한 사람은 솔직히 동창회에 나가기도 망설여지는 것이 우리 사회다. 비록 친한 친구 사이지만 물질 때문에 자존심까지 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간(世間)뿐만 아니라, 사찰이나 교회에서도 보시나 헌금 때문에 신도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뭐니 뭐니해도 머니(Money)가 제일’인 우리 사회로, 오죽하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최고 소망이 돈벼락을 맞아 보는 것일까.

 둘째, 지식과 기술의 과학 만능시대라 많이 배우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에 비하면 상대적 양반이다. 그러므로 우리네 부모님과 청소년들은 일류 대학병은 물론이고 대기업이나 신의 직장이라고 일컫는 공기업과 공무원 취업병이 만연돼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소위 가방끈 짧은 사람이 설 자리가 드물며, 심지어 종교집단에서도 지식에 따라 현학적(衒學的) 사고로 아상(我相)과 아만(我慢)에 집착한 사람들이 주변의 대중들을 무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이 많다면,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상 없이 자기의 지식을 전해주는 넓은 마음과 아량은 왜 배우지 않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찰에서는 법사가 대중을, 교회에서는 설교하는 목사가 성도들에게, 학교 강단에 선 교사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직장에서는 상사가 아래 직원을 무식하다고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날 때부터 다 배우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셋째,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낮은 자에 비해 상대적 양반이다. 자신의 능력보다는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남보다 먼저 높은 자리에 앉아 타인에게 보란 듯이 군림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는 출세주의에 깊이 병들어 있으며, 국가 최고 자리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 소위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들도 많다. 일반회사를 보면 평사원보다는 간부직 사원으로 월급쟁이 사장보다는 실권자인 회장이 직장인의 희망이다. 공직사회는 9급 말단 공무원보다 5급 사무관 아니 1급 관리관이 되려고 아우성이다. 어디 그뿐이랴 국무총리, 장차관이 되려고 발버둥 친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출세주의는 사후에도 조상이나 당사자가 벼슬을 지내야만 후손들이 기를 펴고 살게 만든다. 우스갯소리로 제사 때 올리는 축문에서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보다 같은 값이면 현고처사부군(顯考處士府君) 또는 현고XXX부군으로 생전에 지낸 벼슬이 축문에 들어가길 원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출세지향 주의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 팽배해 있다.

 넷째, 육체의 모습이 곱고 예쁘며 날씬한 사람은 못생기고 날씬하지 못한 자에 비해 상대적 양반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부모가 물려주신 육신을 성형외과에서 뜯어고치는 것이 유행한 지 오래다. 한마디로 인조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성형이 도를 지나치다 보니 외국인들은 한국의 젊은 청소년들을 보고 닮은 데가 너무 많아 전부가 한 가족인지 궁금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 대중가요 가사에서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노랫말처럼 외모만 가꿀 것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과 인격부터 갈고닦아 진정으로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부자와 지식인, 출세한 사람과 미인이 현대사회가 만든 새로운 양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양반이 되는 것도 좋지만 참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나 자신에게 먼저 양반인가 상놈인가 자문해 보면서 스스로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지울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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