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3:56 (수)
수제품의 부흥
수제품의 부흥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7.03.29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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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논설위원
 제4차 산업발전의 혁명이 도래해도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품의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수제품은 기계로 찍어내 천편일률적인 대량생산 제품보다 투박하지만 멋스럽고 정감이 간다. 만든 이의 숨결과 손길이 온전히 녹아있는 수제품은 제품이 아니라 매력의 혼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요즘 수제 맥주, 수제 구두, 수제 쿠키 등 다양한 수제품들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으로 영국 BBC에서는 ‘수제 혁명(Handmade Revolution)’이라고까지 했다. 흔히 수제품이라 하면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명품을 연상하지만, 사실 현대에는 생산 기술의 발달로 수제품과 공장 제품의 품질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름이 주는 멋과 맛, 나만의 개성과 기술로 태어나는 물건과 작품을 의미하는 ‘핸드메이드’는 새로운 장르의 전통문화와 장인의 혼이 숨결이 돼 또 다른 예술세계를 만들고 있다.

 동토의 땅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에 선물로 받은 수제목도리는 바라만 봐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더 이상 추위에 떨지 말라는 의미가 마음을 통해 손끝에 전달돼 목에 두르니 감촉도 좋고 마음도 푸근했다. 수제품의 마력이다.

 꽤 오래전에는 학교에 근무하는 지인이 틈틈이 만들었다는 연필꽂이와 티슈박스를 보내왔는데 티슈박스는 기준 이상으로 크고 단단했다. 책상 밑에는 몰라도 책상 위에 두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티슈박스에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 인상적이라 볼수록 정감이 가 이제는 책상 한편을 지키고 있다. 만든 사람의 많은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작품이다. 살아있는 한 잘 사용하고 고이 간직하고 싶은 귀한 도반의 작품이다.

 나는 수제품을 선호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보다 울퉁불퉁할 수 있지만 공장 생산품에 날카로운 감정에 비교하면, 수제품은 만든 이의 시간과 만든 사람의 영혼이 녹아 있어서 따듯하다. 마치 그 수제품을 사용하고 있으면 그 만든 사람과 관계를 맺고 포근한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오차 없이 치밀하고, 찍어낸 듯 똑같은 제품들에 둘러싸여 사는 우리에게 조금은 거칠고, 삐뚤빼뚤하고, 소박한 핸드메이드 작품들은 정이 가는 대상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에는 만든 이의 취향과 기술과 성품이 올곧게 담겨 좋은 사람을 만난 듯 반갑다. 삶의 쉼표와도 같은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가까이할 수 있는 일상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이 만들어 자주 팔고 사는 물건들은 함부로 대하고 남들 따라 바꾸는 일이 당연시된다. 자주 싫증 내는 일상에서 수제품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면서 조금 천천히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제품이 소중하다는 감동은 김해 무계 전통시장 한 코너에서 보온병에 고객이 원하는 문구나 명언을 캘리그래피(calligraphy)로 작품을 하는 작가를 만나면서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직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쁜 손 글씨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에게 필자가 쓴 시를 보온병에 적어 달라고 해서 지인에게 선물을 했는데 다른 어떤 선물보다 고맙다고 했다.

 디지털 만능 시대에 다양한 장르로 고객이 원하는 형태의 글씨체와 그림으로 상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디지털 글씨에 밀려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손 글씨가 디자인 영역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듯 환영을 받고 있다. 수제품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살아나고 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비평가와 미술가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수제품을 만드는 기술의 전반적인 쇠퇴에 불만을 갖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상품 대신 양심적이고 가치 있는 수제품이 자리를 되찾길 꿈꿨다. 그들의 활동이 기계적 대량생산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대량생산이 야기한 문제에 많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했으며, 손으로 만든 순수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데 도움을 줬다.

 그 당시 미술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일으키고, 중세의 고딕 예술을 높이 평가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은 기계 제작품보다 수제품을 더 중시했다. 이 운동은 산업화의 기계적 생산으로 인해 제품의 질적 하락과 인간으로부터 노동의 기쁨을 앗아간 슬픔에 대한 윤리적인 저항운동을 실천했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수공예를 주장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도 수공예품의 산업 제품으로의 전환은 추한 제품만을 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수공예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했다.

 핸드메이드 산업의 창조적 생태계를 조성해 산업화하고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 수제품의 대중화와 세계화 등 수제부흥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별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할 수 있는 상품개발과 장인을 양성할 수 있는 전문 도제프로그램도 상설 개설돼야 한다.

 의식주 관련 분야와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제품의 열기는 확산되고 있다. 지역의 세계화와 관광 상품과 연계할 수 있는 수제품의 진정성과 지속가능성, 품위의 가치가 끊임없이 창조되고 생산돼야 한다.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품을 마주하는 인간의 오감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자는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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