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01 (토)
자기 합리화 시대에서 벗어나자
자기 합리화 시대에서 벗어나자
  • 이유갑
  • 승인 2017.03.29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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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ㆍ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어느 날 여우가 친구 집을 찾아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걷다 보니 지치고 몹시 목이 말랐다. 마실 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여우의 눈에 나무에 매달린 포도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여우는 너무 좋아서 이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너무 높게 매달려 있어서 도저히 딸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탐스러운 포도송이는 먹을 수 없으니 더 목이 말랐고, 그래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싱싱해 보이는 포도송이를 포기하고 그냥 돌아서자니 너무 억울하던 차에 여우에게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저 포도는 시어빠져서 먹을 수 없을 거야.”

 지금 소개하는 이 사례는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인데, 힘든 현실을 나 스스로 바꿔 놓기 어려울 때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려고 할 때 나타나는 자기합리화이다.

 나에게 닥친 문제를 직접 부딪치면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심리적 책략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책을 자주 쓰다 보면, 현실적인 대처 능력이 자꾸 떨어지고 매사에 소극적이 되거나 현실 왜곡의 심리적인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내세우는 명분과 실제가 일치할 때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상황일 때 누구나 자기 자신과 남에게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교묘하게 명실상부하는 것처럼 포장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즉, 내세우는 명분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본인도 알고, 듣는 사람도 알지만, 너무나 세련되게 꾸미다 보니 반박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명분 찾기 혹은 자기합리화에 성공한 사람은 의기양양해 하고, 이를 놓친 사람은 속만 탈뿐이다. 참으로 딱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들어 공공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공직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공인(公人)의 자기 신념이 확실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분명하게 갖춰져 있다면 이런 비겁한 태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살기가 팍팍한 일반 시민들도 그러하지만, 정치인들을 포함한 지도자들이 자기 보신을 위해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 볼썽사나운 이런 자기합리화를 수시로 하고 있다.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 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독(愼獨)’이라는 옛말이 있다. 군자는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늘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면서 절제하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고 관대하라고 했다.

 우리 한국의 고유한 문화가 많이 전해진 일본 나라(奈良) 지방의 어느 절 입구에는 ‘봄바람과 같은 따뜻함 마음으로 남을 대하고, 가을 서리와 같은 엄격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라(春風以接人 秋霜以持己)’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이 문구는 우리의 신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나라 없이 어린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이런 바람직한 정신적 가치나 덕목들을 가르쳐 왔다. 그리고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라면 기성인들도 이런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함부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성숙함의 수준으로 미뤄 볼 때 이런 통제력과 자정의 능력이 아주 많이 사라졌다고 판단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가적인 혼란의 시기이기에 더더욱 이런 소망을 가져 본다. 사회적인 영향력이 클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사회적 모델이 되는 공인이나 지도자들은 곤란하고 어려울 때마다 부끄러운 자기 합리화를 하지 말기 바란다. 오히려 확고한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나라와 지역을 보살피고, 신독의 마음가짐으로 시민들을 위해 주기를 바란다.

 자기합리화의 시대를 벗어나서 자기 자신과 시민들에게 당당해지려는 지도자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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