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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새는 나무 가려 내려앉고
좋은 새는 나무 가려 내려앉고
  • 권우상
  • 승인 2017.03.28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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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한(漢)나라 영제(왕) 때에는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해 횡포가 극심해 지면서 매관매직이 성행해 뇌물을 주고 관직에 등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조정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 그러자 세력을 가진 군벌들이 각지에서 일어나 각자 세력을 형성하자 나라는 매우 혼란에 빠졌다. 이때 왕을 겁박해 조정을 장악한 동탁에게 반기를 든 병주자사 정원은 장수 여포를 앞세워 연일 싸움을 걸었다. 동탁이 여포와 싸워보니 도저히 당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동탁의 측근인 이숙은 여포와 고향이 같다는 사실을 알고 여포를 동탁의 수하로 끌어들이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장군은 공명과 부귀를 얻는 것이야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기보다 쉬운 일인데 어찌 남의 아래에 있습니까?” 하자 여포는 “주인다운 주인을 만나지 못해 한스러울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숙은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내려앉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골라 섬긴다(良禽擇木而栖 賢臣擇主而事: 량친저무얼치 샌천저주얼쓰)고 했습니다. 일찌감치 기회를 찾지 못하면 후회해도 늦을 것입니다” 이 말에 여포는 그동안 섬기던 정원을 죽이고 동탁을 주인으로 섬겼다. 300석을 받던 동탁은 3천석을 받는 벼슬로 껑충 뛰었다.

 그 후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내려앉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골라 섬긴다”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됐고, 신하들이나 장수들은 어느 주인을 만나야 좋을지에 대한 이해득실(利害得失)을 가리는데 신중을 기했다. 어느 날 위왕 조조가 화원(花園)을 만들었다. 화원이 완성되자 조조는 문에 붓으로 활(活) 자를 하나 쓰고 가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데 양덕조가 말했다. “글자로 보아 문(門) 안에 활(活) 자를 보태면 넓을 활(闊) 자가 되오. 승상께서는 화원의 문이 너무 넓다고 하신 것이오.” 사람들이 다시 화원의 문을 고치자 조조가 대단히 기뻐하며 “누가 내 뜻을 알아냈느냐?” 묻자 측근들이 양덕조라고 말했다. 조조는 입으로는 칭찬했지만 속으로는 양덕조의 영특함을 몹시 꺼렸다. 하루는 장성 북쪽의 사람들이 ‘소’를 한 함 보내왔다. 조조는 ‘일합소’라는 세 글자를 써서 상위에 놓았다. 양덕조가 방에 들어와 보더니 숟가락을 가져다가 나눠 먹었다. 조조가 그 까닭을 물었다. “함 위에 분명히 ‘일인일구소’라고 쓰셨으니 어찌 감이 승상의 명을 어기겠습니까?” ‘합’ 자를 뜯어보면 ‘사람 인’ 자와 ‘한 일’과 ‘입구’ 자가 된다. 거기에 앞에 있는 ‘일’ 자와 뒤에 딸린 ‘소’ 자를 붙여보면 ‘한 사람이 한 입씩 먹는 소’라는 뜻이 된다. 조조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보다 머리가 영리하여 죽일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조조는 두 아들 조식과 조비의 재주를 시험해 보려고 각기 업성의 문을 나가면서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문 지키는 관원들에게 자기 아들을 내 보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조비가 먼저 성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앞을 막았다. 조비는 별수 없이 되돌아갔다. 조식이 그 소식을 듣고 양덕조(德祖: 호는 양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양덕조는 가르쳐 줬다. “그대는 왕의 명령을 받고 나가니 만약 막는 자가 있으면 아예 목을 자르면 되오.” 조식은 성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막았다. “내가 왕의 명령을 받았거늘 누가 막느냐?” 조식은 호통을 치며 문지기의 목을 쳤다. 누군가 이 사실을 조조에게 일려 바쳤다. 조조는 크게 분노했다. “같잖은 녀석이 어찌 감이 나를 속이느냐?” 조조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크게 분노했다. “같잖은 녀석이 어찌 감이 나를 속이느냐?” 그렇지 않아도 죽일 명분을 찾고 있던 조조는 왕명을 어겼다는 죄로 양덕조를 죽였다. 그는 죽으면서 말했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내려앉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골라 섬긴다(良禽擇木而栖 賢臣擇主而事)고 했는데 나는 주인을 잘못 골랐다”고 하면서 한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보았듯이 안종범, 정호성 등 청와대 참모들은 주인(대통령)을 잘못 골랐기 때문에 자신이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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