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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ㆍ현대 헤어미용 변화
한국 근ㆍ현대 헤어미용 변화
  • 신화남
  • 승인 2017.03.23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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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남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한국 최초의 미장원은 맨 처음 어디에 생겼을까? 또 누가 주인이고, 어떤 사람이 고객이었으며, 가격은 얼마나 했을까? 기록된 정보는 많지 않지만 1920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얼골을 곱게 하는 곳이올시다”라는 문구로 실린 ‘경성 미용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미장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미장원의 위치는 서울 운니동 87번지인데 이곳은 창덕궁 앞 동네로 당시 궁궐과 관련된 여성들이 많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네 인근에는 소리꾼, 점쟁이, 각종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이러한 위치에 미용실을 차린다는 것은 한국적인 정서를 이해했던 사람으로 주인이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하게 할 뿐 주인에 대한 다른 정보는 알 수가 없다. 이 미용원에서 취급하는 대상으로 여드름, 기름기, 주근깨, 기미, 비듬, 주름 등을 열거하고 있는 것이나 광고 표제가 “얼골을 곱게 하는 곳이올시다”인 것으로 보아 주로 피부미용을 다루고, 손발의 땀이나 곁땀 등과 함께 머리털 항목도 보이기 때문에 땀 제거나 모발의 미용을 다뤘던 곳으로 추정된다.

 1933년에는 또 하나의 머리 혁명인 ‘퍼머넌트’가 이 땅에 들어왔다. 오엽주(吳葉舟)가 국내 최초의 미용실인 ‘화신 미용실’을 개설했던 것이다. 오엽주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신여성이었다. 화신백화점 안에 미장원을 개업해 퍼머넌트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 당시 파마는 전기 파마였는데, 한 번 하는 데 그 가격이 자그마치 쌀 두 섬이나 돼서 그것만으로도 장안의 화제가 됐다고 한다. 그런 돈을 내고 파마라는 걸 하는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자들인지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기웃거리는 남정네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화장은 안방에서나 하는 여인들의 일이, 그것을 업으로 삼는 전문 업소가 생기고, 그런 곳에 드나드는 고객층이 있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큰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경성 미용원의 광고에 미용술, 화장하는 법, 마사지 등 모든 미용과 화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나 고치고자 하는 이가 전화로나 편지로 문의하면 무료로 자세한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글귀를 볼 때 이곳 미용사는 미용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과 함께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해방과 먹고살기에 바빴던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미용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사라졌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머리에 대한 관심이 살아난 것은 전쟁 이후 국가 재건에 힘쓴 결과로 산업이 점차 발달해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 70년대부터였다. 이때 남성들 머리의 상징은 ‘장발’이었다. 청바지에 장발은 곧 남성들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장발을 단속하는 경찰관과 장발족들의 쫓고 쫓기는 신경전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무렵 미용에도 외국의 기술이 도입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커트 형태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여성들은 오징어 발처럼 늘어뜨린 파마를 한 ‘거지 머리’가 유행이었다.

 1980년대에는 다양한 퍼머넌트 웨이브 기법이 개발됐으며, 특히 여성들은 할리우드에서 비롯돼 세계를 휩쓸었던 ‘오드리 헵번 머리’ 등 복고풍이 유행을 타기도 했다. 남성들은 앞머리만 약간 길게 놓아두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치켜 올려 깎고 정수리 부분은 편평하게 다듬었던 상고머리가 유행이었다.

 1990년대에는 다양한 색의 염색과 탈색이 유행하고 자연스럽고 손질하기 쉬운 헤어스타일을 선호했다. 이때 여성들 사이에서는 앞머리를 스프레이를 뿌려 위로 치켜 올려 고정시킨 ‘자존심 머리’가 유행이었고, 멋 내기 남성들은 ‘꽁지머리’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 시작돼 여중생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 모았던 이른바 ‘깻잎 머리’는 기성세대들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머리를 한쪽으로 빗어 모아 유치한 핀으로 고정시켜 촌스럽기 짝이 없는 머리였지만 좀 논다 하는 여중생들의 필수 미용 코디네이션(coordination)이었다.

 이때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힙합 음악과 함께 힙합 패션이 유행을 타면서 헤어스타일은 또 한 번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스타일에 다양한 염색 머리가 대중화됐던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명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이 유행해 미용실마다 연예인들 사진이 즐비하게 걸렸다. 또한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머리 형태가 나타날 뿐 아니라 남녀노소 구별 없이 점차 다양화되고 개성화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다양하면서도 관리가 쉬운 개성 있는 머리 모양들을 선호한다. 또한 건강이 중요시되면서 건강한 두피와 모발을 유지하기 위한 트리트먼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앞으로도 시대에 따라 미용발전은 끊임없이 변화될 것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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