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7:05 (토)
더 발가벗겨야 할 사회
더 발가벗겨야 할 사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3.16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류한열 편집부국장
 우리 사회는 더 발가벗겨져야 한다. 여기저기 깔려있는 신화를 걷어내야 한다. 시대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특정 언론이나 몇 사람이 주도해 만들어진 소위 ‘주류’라는 목소리를 끊어야 한다. 조기 대선 선거일이 5월 9일로 확정됐다. 장미가 고혹한 자태를 뽐낼 때 우리는 새 대통령을 보게 된다. 빠른 대선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까지 촛불과 태극기나 부딪치면서 우리 사회는 극심한 흑백의 신화에 갇혔다. ‘나와 너는 다르다’는 위험한 생각의 칼날 위에서 춤을 췄다. 그동안 우리의 마음은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 더한층 보수와 진보의 골이 깊어졌다.

 모든 정치인은 신화를 만들어 자신을 포장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을 대중 앞에 내놓고 우매한 선택을 하게 한다. 대중이 깨어있지 않으면 허상을 보고 대화하는 꼴이 된다. 지금 각 당마다 장미 대선에 나갈 주자들이 득실거린다. 이달 말이나 4월 초가 되면 모든 당이 후보를 정해 장미 가시로 상대를 찔러 피나도록 싸울 것이다.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이 인물을 제대로 고르는데 쓰이면 좋겠다. 피를 많이 흘리면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유권자는 신화를 깨고 특정 후보를 뽑지 않을 테니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늘었지만 흐르는 선율에 눈을 감고 오롯이 감동에 젖기는 부담이 크다. 개인적으로 아직 클래식에 온전히 빠지지 못한다. 감동이 제한적이란 말이다. 음악의 신화가 청중의 귀를 막고 있다. 음악에 깔린 천재주의 환상은 보통 사람을 음악 없는 거리로 내몬다. 머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바로 오선지에 휘갈겨 쓴 모차르트는 보통 사람이 품기에는 너무 신동이다. 고뇌에 찬 음악의 영웅 베토벤에게 가까이 나가려면 기가 질린다. 이런 이미지는 다 거짓이다. 음악의 신화가 많이 걷혔지만 지금도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세계 통신사가 제3세계 국가의 뉴스를 다룰 때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들춘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기자들은 제3세계 국가를 낮춰 보는 시각을 오래전부터 달고 있었다. 예전보다 좀 나아졌지만 자살 테러 공격이나 후진국형 사고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세계 주요 뉴스는 알게 모르게 미국과 유럽 중심 세계를 만들고 제3세계는 몹쓸 땅으로 그린다. 내전 때문에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힘든 일상과 기아에 허덕이는 수단 아이들의 멍한 눈망울 영상이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곳을 사람이 살기 힘든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일등 공신은 단연 서구 통신사다. 사람들은 실제와 거짓이 뒤섞일 때 거짓을 마음에 담는 묘한 구석이 있다.

 세상엔 온통 만들어져 강요된 사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온전한 실체를 만져보지 못하고 겉도는 사실에 판단을 내리는 잘못을 매일 저지른다. 어쩌면 깊은 곳의 실체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허상에 목매다가 이도 저도 아닌 실질의 골짜기에서 뒹기는 건 인간 실존의 저주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백 년의 고독’은 백 년 동안 6세대에 걸친 한 가계의 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온갖 이상한 사건 속에서 부엔디아 가족은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고독 속에서 스러져간다.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면 인간 존재의 가죽은 하나씩 벗겨지기 마련이다. 우리 또한 현재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겉모양에만 눈을 박다 진실을 영 잊어버릴지 모른다.

 오는 5월 대선까지 진실을 가장한 거짓이 울려 퍼질 게 뻔하다. 억지로 만든 영웅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춤을 추기도 할 것이다. 특히 대세라는 괴물을 만들어 유권자의 생각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해 5월 장미 향기를 독차지하려 할 수도 있다. 탄핵의 뒷맛은 한쪽은 달콤하고 다른 한쪽은 쓰다. 탄핵이 낳은 불복도 힘을 발휘한다. 이 모든 요소가 범벅이 되면 이번 대선은 엄청난 신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요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사상과 양심에 따른 자유를 버리라는 압력을 받는다. ‘주류’에 다른 생각을 섞으면 내돌리는 희한한 세상에 산다. 탄핵을 바라는 촛불이 거대한 산을 이룰 때, 입김으로 그 촛불을 끄려 했던 생각을 탓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서로 인정하면서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에는 신화가 춤을 못 춘다. 대선이 너무 급히 찾아왔지만 신화로 포장된 인물을 내치는 여유는 있어야 한다. (편집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