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2:59 (금)
적폐 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적폐 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7.03.13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백성이 왕을 축출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절차에 의해 살아있는 권력을 쫓아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국민들의 손으로 절대 권력을 쫓아냈다는 점에서 한민족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할 중요한 사건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제 대통령이라 할만한 삼성의 총수를 구속하는 사태까지 낳았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대표 양 권력이 쫓겨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는 출발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탄핵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에 이제는 더 이상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나아가 권력자와 힘 있는 자들이 특권과 반칙, 편법을 동원해 기득권을 강화하는 것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권력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짓밟는 작태를 수없이 보아왔다. 재벌들이 자금력과 조직력을 동원해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등 우리 경제를 왜곡시키는 일이 비일비재 했음도 익히 알고 있다. 이번 탄핵사건은 대한민국을 움직여온 힘 있는 기득권 세력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짐과 동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됐다. 시각차는 있지만 각 정당과 국민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척폐청산을 외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적폐가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적폐로 볼 것인지. 적폐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대선주자들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저 원칙론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정경유착,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든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사법부의 부패,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착취적 노동구조, 기득권에 유리한 사회풍토 등을 적폐로 꼽는다. 이것들은 기득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뿐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한 비효율과 방만함, 이기심들도 적폐들이다. 우리 법 제도와 사회를 작동시키는 관행과 규칙에도 적폐를 낳는 요인들이 있다. 이익집단들의 횡포, 거짓에 관대한 풍토,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저하와 기여한 몫 이상을 요구하는 뻔뻔함 등은 적폐의 예가 될 수 있다.

 현재 일부 대권 주자를 말하고 있는 적폐청산은 기득권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득권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숱한 혼란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볼세비키식 혁명이 아니라면 청산은 어쩌면 불가능하다. 그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청산이나 타도의 대상은 기를 쓰고 저항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아 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거나 역사의 물결에 밀려갔을 뿐이다. 그것이 역사다. 프랑스대혁명이 결국은 왕권회귀로 돌아가고 공산혁명이 결국은 실험으로만 남게 된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무혈혁명의 완성은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적폐들을 효과적으로 해소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다음 정권이 적폐 청산의 칼자루를 쥘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것 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훨씬 중요한 대한민국을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드는 역사적 과업이다. 그 역사적 사명이 다음 정권만의 몫일 수는 없다. 유한한 정권이 국민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타도식으로만 접근한다면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 그래서는 청산이 성공할 수도 없다.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감당해 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