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인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행위가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파면으로서 얻는 헌법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재판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파면을 결정ㆍ선고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광장혁명의 승리라지만, 안타까운 국가적 비극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됐다.
대통령이 되겠다면 자신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하지만 18대 대선 TV토론은 탄핵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공약과 현안의 재원확보 방안을 묻는 질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안제시는커녕,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말만 반복했다.
당선 후, 1년도 되지 않아 ‘공약(公約)은 부도수표가 됐다. 경제민주화는 폐기처분됐고 4대 중증질환 전액국가부담, 기초연금,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은 후퇴됐다. 시쳇말로 표를 얻으려는 허언이었고 유권자는 거기에 속아 넘어갔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정계 입문 이후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같은 단답식 화법은 콘텐츠가 부족한 베이비 토크란 지적에도 국민들은 실행력을 믿었다. 하지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란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배신자로 낙인 찍는 등 대통령의 독선과 독단은 되레 국민을 배신한 결과였다.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신의 한 수’로 여겼겠지만 ‘꼼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꼼수는 상대방이 실수하기를 바라며 두는 요행수다. 상대방이 걸려들면 승부를 뒤집는 ‘묘수(妙手)’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 승부를 망치는 ‘악수(惡手)’로 귀결된다. 게다가 너무 자주 쓰면 예의가 없다고 욕먹기 딱 좋은 수가 꼼수다. 국정농단사태가 불거진 후 대통령의 행보는 꼼수만 연발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해 10월, 개헌 카드로 뒤흔들려 한 것도 그렇고 12월의 임기 단축 카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본인은 묘수라고 생각했겠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의도가 뻔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또 대국민담화 때와는 달리,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 출석도 거부하는 대통령이 새해 첫날 가진 ‘티타임’이란 기자간담회도 그렇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지참을 금지하고 사진 촬영을 불허한 의도를 국민들은 훤히 꿰뚫고 있다.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의도다. 의도가 드러난 꼼수는 결국 악수가 될 수밖에 없다. 광장의 목소리는 탄핵에 머물지 않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하는 출발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5월 조기 대선이 확정돼 정치 일정의 안개도 걷혔다. 탄핵 확정 다음 날부터 60일 이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5월 9일까지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은 장밋빛 구호에 현혹될 게 아니라 실현 가능성과 진정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줬다.
홍준표 지사는 보수진영으로부터의 러브콜이 잦다. 물론, ‘초상집 상주노릇은 안 한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출마는 않겠다지만 자천타천 보수의 존재감 있는 대권후보여서 최근 일정은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탄핵으로 대선이 사실상 확정된 이상, 출마여부를 곧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틈새의 도정은 다소 느슨하다. 홍 지사의 당당한 도정운용은 타 지자체가 벤치마킹할 정도였지만 대선의 틈새에서 현안보고의 묵살을 지시하거나, 나랏돈을 제 돈 마냥 선심 쓰고, 적당한 숫자놀음도 잦다는 수군거림이다.
물론 특정한 또는 일부 고위직 공무원들의 꼼수 처신이겠지만 ‘칭찬받을 보고’만 해대는 원인과 목적이 인사와 보신이란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아무튼, 경남도민들이 경남지사 출신 대통령 탄생을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경남도청의 현주소는 다소 흐린 감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