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1:39 (수)
달라서 미안해요
달라서 미안해요
  • 이주옥
  • 승인 2017.03.09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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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상을 받기위해 단상에 올라온 그녀는 작은 체구에 수수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단상뒤편 벽에 커다랗게 붙은 현수막의 인쇄된 사진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사진속의 그녀는 보브 단발머리에 웨이브를 넣은 머리가 세련미 넘쳤다. 얼굴엔 주름과 잡티 하나 보이지 않고 말간 피부는 더욱 지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상을 받고 인사말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든 그녀는 대뜸 실물의 모습이 사진과 달라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했다. 너무 많이 보정을 한 것 같다며 이해해 달라는 귀여운 고해성사였다. 객석에 앉은 회원 400여 명은 박수를 치면서 한바탕 폭소를 하며 그녀의 고백을 받아줬다. 비웃음이 아닌 이해와 너그럽고 사랑 가득한 따뜻한 박수였을 것이다. 내 마음처럼.

 사진이 원판불변의 법칙을 거역한 지는 오래다. 주름을 없애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고 각진 얼굴도 갸름하게 도려내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보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장착된 카메라엔 아예 그런 기능을 갖춘 어플리케이션이 미리 깔려 있기도 하다. 사진관에서 명함판이나 여권사진을 찍어도 알아서 보정을 해준다. 내 모습이 아닌 듯 해 보이는 내 얼굴에 내가 반할 정도다. 진짜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오히려 폐가 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현실에 누가 봐도 자랑스러운 상 받는 것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에 붙게 될 사진인데 보정이 필수요소인 것을 누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중에도 그녀는 자신의 실물과 사뭇 다른 모습을 고백하는 것이 인사말보다 더 중요하고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몇 사람만 보이면 나이 얘기를 하고 앞에 앉은 사람이 많게는 실제보다 10년 이하로까지 보이는 모습에 감탄을 하고 비결을 묻는다. 나이보다 더 낮게 봐주면 누구보다 눈치 있고 처신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만에 하나 본 나이 보다 한두 살 정도만 더 많게 얘기해도 순식간에 눈치 없고 배려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나 여자들의 세계에서 남에게 보여지는 나이는 민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공항에서 여권을 제시할 때나 관공서에서 주민등록증을 내 보일 경우에도 검시관과 마주보는 시간이 예전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며 얼굴을 보고 또 보는 그들의 폼이 민망하기도 하고 재밌는 세상이다. 한편, 혼란을 주게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내 모습이 진짜 나이일 것이다. 나 또한 보정하지 않고 실물 그대로 찍힌 내 사진을 보면서 나이를 실감할 때가 많다. 간혹 SNS에 올린 사진에 좀 달라 보이는 것을 언급하며 확인사살 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예뻐졌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면서. 그러려니 짐작하며 봐 넘겨주면 될 터인데 말이다. 그 때마다 솔직히 보정 사실을 밝히며 진화하는 세상 탓이지 내 탓이 아니라며 배 째라한다.

 간혹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이나 쇼윈도 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에 내가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아무리 화장에 공을 들이고 성장을 하고 나서도 예쁘지 않아 보이는 것이 나이 탓이라고 생각하면 울적하기 그지없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그 나이에 따라 생기는 주름마저도 흔쾌하게 수용하리라 했던 결심이 그때마다 흔들린다. 나이듦에서 오는 결과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장은 젊음 아니던가.

 요즘 부쩍 사진이 필요할 때가 많다. 지면이나 사진으로 나를 알리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본질을 망각하고 사진 고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때가 있다.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아무래도 더 나아보이는 모습의 사진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면 조금 미흡하거나 걸리는 부분은 슬쩍 보정을 한다. 다만 직접 대면했을 때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배려는 하면서 말이다. 초면에 ‘사진과 달라서 미안하다’는 인사부터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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