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51 (화)
보국(報國)철학
보국(報國)철학
  • 이주옥
  • 승인 2017.03.07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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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 ‘흉년에 땅 사지 않는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집안을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지키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처신이면서 동시에 주변 공동체를 배려하는 조선시대 보국(報國)철학이었다. 이즈음에 옛 재벌들의 마음가짐이나 철학이 다시 한 번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가진 기업 윤리의식은 자신의 집안은 물론 나라를 보전시키는 주춧돌이었다. 작금의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철학임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대한민국 서열 1위 대기업 총수가 구속됐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축이 되고 있으며 세계적 브랜드로서 위상을 자랑하는 그 기업은 국가 원수와 손을 잡고 그의 사욕을 채우는 일에 공헌을 하고 기업 이득을 취했다. 한 개인의 자녀에게 수십억의 지원을 하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워 준 것은 개인의 기업철학에도 치명적이고 국가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기업을 이루고 키우는 데 1등 공신은 분명 소비자인 국민이다. 그런 국민으로 인해 이룬 재물과 명성을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고 나라의 원수에게 뇌물을 주며 엄청난 이권을 받아 챙겼다. 국가의 조력 없이 기업은 존재할 수 없고 국민의 받침 없이 기업이 성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로 결탁하고 유착하며 결국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모든 수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잔치로 치러졌다.

 구속된 재벌총수의 선대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한 라이벌 기업가는 “성공을 위한 치열한 승부 근성을 갖고 자신의 단점을 되짚어 고쳐가며 성공의 길을 현실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치욕도 감수하겠다는 기업가 정신, 결국은 사업으로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사업보국’ 신념이었다고 바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업을 키우는 기쁨, 기업의 성장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명감이 기업가 정신의 요체라는 말일 것이다. 선대회장인 그가 살아있다면 지금 우리 경제와 자신의 기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한 쇠고랑 찬 그의 자손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한 기업이 한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결국 한 기업의 윤리의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는 국가의 전폭적 지원과 국민의 지지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기업을 만든 것이지 그 기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선대경영자는 ‘나라가 있고 기업이 있는 것’이라며 사업보국(事業報國)을 경영 철학으로 삼았는데 어쩌다 그 후손은 그 선대의 경영철학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결국 수갑 찬 모습으로 기업 이미지는 물론, 국가적 위상을 추락시키고 국민에게 분노의 화살을 맞는 것인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다.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던 굴지의 기업이 어쩌다 타락한 정부와 손을 잡고 동반몰락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어이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일이 기본에 입각한 정상적인 도모와 실행이라면 그 결과는 의당 명예로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 기업총수는 기업가로서 소신과 명예에 가치를 두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고 세계 속에서 경쟁을 할 만큼 용기도 자신감도 없었을까. 부조리한 방법으로 나라와 결탁을 할 만큼 그 기업의 근간은 나약하기만 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가치와 정의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 원수와 연루된 부조리한 정치 행태와 그에 따른 기업들의 무수한 비행과 비리를 바라보며 탄식에 탄식을 하고 있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검찰은 법을 근거로, 혹독하게 죄를 묻고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정의롭게 사법 처리한다고 하나 그 과정은 답답하고 결과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정국은 물론 경제마저도 불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 형국이다. 다만 우리는 사필귀정에 희망을 걸고 그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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