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특이한 정치인들
조선의 특이한 정치인들
  • 송종복
  • 승인 2017.02.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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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해 1910년에 멸망했으니 역대 27왕, 역년 518년이다. 이는 세계사의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왕조이다. 이러고 보니 기괴망측한 일도 많다. 따라서 그중 특이한 정치인을 색출해 인물됨을 언급해 본다.

 신숙주는 7개 국어(한국어, 중국어, 몽고어, 여진어, 일본어, 인도어, 아라비아어)에 능통한 언어학자이다. 그는 설총의 이두문자를 해독했고, 최초로 일본과 관련된 <해동제국기>를 지어 어문학에 족적을 남겼다. 예조판서에 15년간이나 재임한 기록이 있으며 영의정을 지냈다.

 홍유손은 중종 5년(1510)에 63세로 진사시에 장원급제했다.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76세에 처음 장가들어 포천시 오인포(五仁浦)에서 신혼생활을 하다가 4년째인 80세가 되던 해 아들을 낳으니,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이라 해, 아들 이름을 홍지성(洪至誠)이라 했다. 당시의 사내는 보통 10세에 장가를 가게 되는데, 무려 76세의 죽을 나이에 첫 장가를 가고, 아이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99세에 별세했다.

 윤증은 소론의 영수이며 왕의 얼굴 한 번 보지도 않고, 또 과거에 응시한적 없이 정승(우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가 받았던 관직을 보면 36세 때 내시교관, 공조정랑, 사헌부지평, 호조참의, 대사헌, 우찬성, 좌찬성, 83세 때는 판돈녕 부사까지 계속 관직이 승진되면서 제의 받았으나 모두 사양했다. 그는 단번에 정승이 된 진기록으로 역사상 한 명 밖에 없는 인물이다.

 정원용은 20세에 장원급제해 72년간이나 장기 근속한 인물이며 마지막에는 영의정으로 정년을 맞았다. 그동안 지극히 검소해 청백리에 올라 있기도 한 인물이다.

 정태화는 호조판서를 11년간 최장기간 지냈던 인물로 유일무이하다. 그는 재정문제에 대한 당대 제일인자의 명성을 날렸다.

 김세민은 70년간 봉직하면서 7대 임금 즉,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을 보좌한 기록을 남겼다.

 박종덕은 42세에 이조판서가 된 후 18번이나 재임했다. 이조판서는 관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하기에 인사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서거정은 벼슬의 꽃인 홍문관의 대제학을 23년간 역임한 인물이다. 당대의 대문장가로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편찬에 참여했다. 왕명으로 <향약집성방>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로는 <역대연표>, <동인시화>,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 <사가집> 등이 있다.

 정약용은 28세 때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종교문제로 19년간 강진에 유배됐다. 따라서 역대 가장 오랜 귀양살이를 한 인물이다.

 황희는 정승으로 18년간 재임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조선 제일의 청백리 관료이자 가장 대표적인 신하이다.

 박종래는 5조(이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판서를 돌아가며 총 15회나 역임해, 판서(장관)직을 통틀어 가장 많이 지낸 인물이다.

 이민구는 지봉유설을 지은 이수광의 아들로 24세에 장원급제했다. 문장이 뛰어나고 저술을 무려 4천여 권으로 가장 많은 책을 저술했다.

 김정희는 선비의 표상인 호(號)를 가장 많이 가진 분으로 무릇 200여 개의 호를 지어 썼다. 완당(阮堂)ㆍ추사(秋史)ㆍ예당(禮堂)ㆍ시암(詩庵)ㆍ과파(果坡)ㆍ노과(老果) 등이다. 유명한 추사체의 창시자다.

 정태화는 사직서를 가장 많이 올린 신하이다. 영의정이었던 그는 37번이나 사직상소(사직서)를 올려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탄핵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정치의 현주소다. 관직이란 천운을 가져야지 권모술수로 승진하려는 자와 남을 음해해 출세하려는 자는 위에 열거한 특이한 인물됨을 눈여겨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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