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길에서 찾아보는 느림의 미학
버려진 길에서 찾아보는 느림의 미학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7.02.26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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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어릴적 비포장 도로를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가다보면 길옆에 핀 꽃들이 한 눈에 들어오곤 했다. 새 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가는 시골길은 차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풍경과 함께 지금도 동판에 새겨진 무늬처럼 선명하다. 그때는 굼벵이처럼 가는 버스가 고통스럽게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라는 선물을 남겨준 셈이다. 지금은 어디로 가든 길가는 즐거움이 없다. 오직 목적지와 출발지만 있을 뿐이다. 분명히 어디를 가긴 했는데 중간에 뭘 봤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머리속에 남은 것이 없다. 중간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남는다. 넓고 잘 포장된 도로는 우리에게 시간과 속도를 선물했으나 감성과 추억은 빼앗아 버렸다. 감성의 영역은 축소되고 그 빈 자리를 편리함과 계산의 영역이 차지했다. 어디를 가든 시간과 속도만을 생각하고 중간에 무엇이 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 결과는 황량하다. 곧게 뻗은 도로에 자리를 내준 꼬불꼬불한 길은 잊혀진지 오래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추억을 만들어 냈던 공간은 지우개로 지운듯 우리의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폐가가 된 주유소, 먼지로 가득한 버스정류장의 흔적만이 먼 옛적의 향수를 겨우 붙들어 매고 있을 뿐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적은 온데간데 없고 가물거리는 기억만이 옛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잊혀진 공간의 멀지않은 저편에서는 쌩쌩거리며 달리는 차량과 띄엄띄엄 새로 생겨난 주유소가 있을 뿐이다. 거리에 사람은 사라졌고 냉기만이 흐른다. 경제개발 역사 60년도 채 안된 우리나라 국토의 현주소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너무도 아쉬운 공간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내팽개쳐저 있다.

 인심과 도덕은 빨라진 도로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각박해지고 매말라 간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훈육은 사리지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이기심만이 득세한다. 도로가 막히든지 말든지 내 편한대로 주차한다. 과정은 생략되고 내 주장만 소리 높은 것이 정치다. 모든 평가의 잣대는 실적에 있고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이타심과 상대에 대한 배려, 역지사지의 사고는 설 자리가 없다.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의 몫일 뿐이다. 양철처럼 쉽게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 가벼운 사람들만 늘어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과정은 생략하고 목표만 생각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관광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휙 둘러보고는 사진찍으면 끝이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하면서 인증샷이 우리에게는 관광인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돌 하나 나무 한그루와 교감을 하려는 시도는 아예 없다. 옛 사람의 그림자를 더듬어 보며 내 삶을 반추하려는 여유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슬로푸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를 관광자원화하려는 곳이 더러 있다. 하지만 체험보다는 보여주는 데 치우쳐 있다. 느림은 경험하는데 가치가 있다. 걷고 직접 만들고 내 손으로 해야 해결되는 불편함을 경험해야 자연과 교감하고 타인의 존재에 감사하게 된다. 빠름과 편리함은 도구와 문명 이기의 몫이지만 불편함과 느림은 사람과 자연의 몫이기 때문이다. 속도지상주의, 결과만능주의, 이익지상주의에서는 느림과 교감, 배려와 성숙은 자리할 여지가 없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과 적폐의 뿌리에는 속도와 그 속도가 빼앗아버린 감성과 교감의 실종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불신과 혼란, 정체는 최순실이 혼자 몰고 온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앞만 보며 속도에만 매달려온 우리 모두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빠른 것이 결코 빠른 것은 아니고, 느린 것이 결코 느린 것만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우리 주변에 널려져 있는 버려진 길을, 느림을 몸소 경험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체험의 장소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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