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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의 사랑
도깨비의 사랑
  • 정창훈 기자
  • 승인 2017.02.22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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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객원논설위원
 도깨비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닌 상상의 존재다. 어린 시절 전깃불이 없어 호롱불, 촛불, 등불로 밤을 밝혔지만 호롱불이나 촛불 모두 어둠을 밝히기에는 늘 부족했다. 기름을 아낀다고 호롱불을 오래 켜놓을 수도 없었고 불을 끄고 나서 새벽까지는 길고도 먼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다. 방 윗목에 있는 호롱불을 입으로 ‘후’하고 부는 일도 서로 미루다가 내 차례가 돼 불을 끄고 나면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실 같은 연기와 함께 도깨비가 나타나곤 했다. 너무 놀라 ‘엄마!’를 부르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던 기억이 난다. 도깨비는 내가 낮에 착한 일을 했으면 칭찬을 해주고 나쁜 짓을 했으면 혼을 내곤 했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그 당시 들었던 옛날이야기 중에는 도깨비가 단연 인기였고, 도깨비한테 홀려서 길을 잃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깨비불을 못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도깨비는 우리 생활 속 가까이에서 함께 했다.

 민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과 상원날(음력 정월 보름날) 밤에 도깨비불을 보고 그해 농사의 흉년과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도깨비들이 불을 켜고 왕래한다는 그날 밤에 도깨비들이 동에서 서로 가면 풍년이고 서에서 동으로 가면 흉년의 징조라고 해석한다. 이때 도깨비는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으나 걸음이 빨라서 넓은 들을 순식간에 건너간다. 도깨비는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해서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다. 어린이, 거인, 노인, 총각, 처녀 등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번 tvN의 화제의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에서 사랑의 전도사 도깨비 공유가 나타났다.

 도깨비는 있을까, 저승사자나 귀신이 있을까 하는 화제도 만발했지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어찌 있다 할 수 있을까.

 변화무쌍해 투명체가 될 수도 있고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초인간적인 괴력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도깨비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돼 있는 것을 볼 때 이미 삼국시대에도 도깨비 신앙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정령(精靈)이고 신(神)이 도깨비다. 원시 신앙적인 귀신 사상에 의해 형성됐지만, 죽은 사람의 넋으로서의 귀신과는 다르다. 도깨비는 사람이 죽은 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물체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자연물이나 사람이 쓰던 물건이 변해 도깨비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그네가 밤길을 걸어간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낸다. 아침에 깨어보니 부지깽이 하나를 안고 누워 있었다”는 예화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 땅의 이야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았다. 캄캄한 밤이 만들어낸 환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쓸쓸한가.

 도깨비는 귀신처럼 악독하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원만한 마무리와 권선징악이 보장된 믿음 아래 밉지 않은 심술을 부릴 뿐이다. 도깨비가 지닌 신통방통한 능력과 지혜는 결국 인간에게 아름답게 이용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고 있지 못한 소원을 성취하고 싶은 생각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권력을 잡고 싶다. 예쁜 도반과 살고 싶다. 아름다운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 등의 많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그리 여의치 않게 마련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도깨비를 믿고 상상하고 공유하면서 그러한 욕망과 꿈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같은 일이 일상이 된 현실과 달리 천년을 이어가는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드라마 도깨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생과 내세를 오가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러브스토리를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내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우린 죽었다고 해서 모두 죽었다고 할 수 없다. 법구경은 부, 명예, 권력도 모두 앗아가는 죽음 후에도 남는 것을 업(業 )이라고 했다. 우리는 예상치 않고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면 도깨비 장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원인은 나에게서 비롯된다.

 내 마음이 바로 신(神)이다. 운명은 바로 신이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나의 운명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며 만들어 가는 삶이 나의 운명이다. 나는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내 마음은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가? 내 마음의 불을 끄며 나타난다는 도깨비는 어둠을 희미하게 밝히는 또 하나의 사랑이 될 수 있다. 어둠은 거대한 우주의 품이다. 내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다. 빛을 먹어 치우면서 방 안을 깜깜하게 채운 어둠은 고단했던 일상을 편안하게 쉬게 하는 안식처가 된다.

 어둠과 도깨비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사랑이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어둠은 밝음처럼 도깨비는 사람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소중한 도반이 될 수 있다. 도깨비 공유는 내 마음속에서 다정한 친구로 사랑의 메신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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