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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냥’
오늘도 ‘그냥’
  • 이주옥
  • 승인 2017.02.21 2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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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살아가는 데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 비중은 자못 크다. 우리들은 보통 누군가를 만날 때 일단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한다.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보니 선택은 더 쉽지 않다. 그럴 때 보통은 ‘아무거나’ 또는 ‘그냥’이라는 대답을 하기 십상이다. 아주 허물없지 않은 관계이면 지나친 자기표현이나 주장보다는 두루뭉술함이 더 일반적이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이 ‘아무거나’와 ‘그냥’이 관계 맺고 유지하는 데에 얼마나 난감하고 골치 아픈 것인지를. 특히나 ‘그냥’이라는 말에는 깊고 무수한 의미가 함축돼 있어서 더욱 어렵고 고민이 된다. 함께한다는 것엔 상대방의 의사와 내 의견이 결합함으로써 완벽해지는데 이 불분명함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부드럽지 못한 만남이 되기가 쉽다.

 가뜩이나 입학이나 입시, 취업에 자기소개서가 큰 의미와 몫을 차지하는 시대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자기를 확실하고 완벽하게 어필하지 않으면 통과하기 쉽지 않다. 흔히 두루뭉술 유연한 사람이 인간성도 좋고 더불어 사회생활 잘한다는 얘기를 한다. 실력 있고 실수 없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더러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고 하는 게 아직은 우리 정서다. 하지만 현실은 확실한 자기표현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일상사에서도 간혹 무얼 먹겠느냐고 물어보면 ‘아무거나’, 무슨 일을 했을 때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성의 없이 대답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답답해서 언성을 높일 때가 있다. 그렇게 판단력도 없고 자신의 생각에 소신이 없으면 어떻게 이 한세상 자기 자리 차지하고 살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난 대체적으로 내 의사를 분명히 밝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아닌 것은 아니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관계나 업무적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언행에 종종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다. 쉬운 말로 인정머리 없고 이기적이라고. 그러나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누군가가 나의 의견을 반대하거나 자기의 기분이나 형편에 따라 내 의견을 따라주지 않을 때도 섭섭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많다. 흙수저, 금수저 나누며 살맛 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자신의 소신이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태생의 난점을 깨뜨릴 수 있다고 아직은 믿는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고집이 있고 의사가 분명하고 자기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유연한 처세를 하는 사람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고난이 더 있긴 해도 그 성과는 훨씬 확실하고 클 때가 많다.

 청년실업이 너무나 무섭고 실직과 폐업이 난무하는 어려운 시절이다. 대충 사람 좋은 것만으로 한세상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필사적으로 내 것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언제나 빈손일 수밖에 없는 망망한 삶의 연속.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 자기 소신이며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복잡하고 대치하는 것이 많다 보니 자꾸 피하려고 하고 차라리 홀로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이면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할 필요도 없고 주장이 꺾여 상처받지 않아도 되니 뱃속은 편할 것이다. 하지만 반사회적이 되니 도태되고 고립되는 낙오자로 전락하고 만다.

 입춘이 지난 지 여러 날이건만 날씨는 여전히 한겨울 속 같다. 아니 갈수록 더 추워지는 듯하다. 광장엔 정치에 분노하는 열혈시민들의 촛불행진이 끊이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은 좀처럼 덥혀지지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우리는 겨울잠을 자는 두더지처럼 몸도 마음도 오므린 채 희망 없이 그저 ‘그냥’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목적이 없는 현재, 희망이 없는 미래. 삶이라는 지엄한 순명 앞에 ‘그냥’ 산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좀 더 치열하고 가열 차게 살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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