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살아있다
신화는 살아있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7.02.16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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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부국장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種)을 누르고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꿰찬 데는 가공한 이야기를 믿는 ‘대담함’이 있었다. 신화가 거짓인 것을 알지만 실제 믿는 마음이 서로를 결속시켰다.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건설하고 광활한 대륙에 걸쳐 수억 명을 다스리는 제국이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신화가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신화로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 보지 않고도 부족이나 국가를 위해 손을 잡고 적과 맞설 수 있었다. 가상의 실재는 큰 힘을 북돋우고 확장하는 힘을 만든다.

 예를 들어 수렵채집인 우두머리가 ‘산 위에 돌을 세워 놓고 하루 세 번 돌에 대고 기도하면 거대한 동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하고 믿는다. 수렵채집인은 다른 사람과 연합해 맘모스를 사냥하면서 겁 없이 덤벼든다. 왜냐면 산 위 돌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가공의 이야기를 믿는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샤먼이 마을 앞 강가에 가서 몸을 세 번 담그면 병이 낫는다고 하면 우매한 병자는 예언을 믿는다. 그리고 강에 몸을 담그고 낫기를 바란다. 실제 나았는지는 몰라도 그 병자는 죽을 때까지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여전히 요즘에도 유효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수백만 년 동안 만든 신화의 힘이 현대인들의 DNA에 붙어있다고 믿는 것은 어찌 보면 합당하다. 국가는 공통의 국가적 신화를 기반에 두고 있다. 민족이나 국가 대부분은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고 건국 신화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신화가 사람들을 음침한 골짜기로 몰기도 하지만 죽음의 다리를 건너게 하는 힘이 된다. 신화는 제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내몰지라도 계속 살아있을 가능성은 높다.

 한국 사람만큼 하나의 신화에 매몰되는 국민도 드물다. 우리는 주말마다 촛불과 태극기가 만들어 내는 신화에 푹 빠져있다.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용인 혹은 기각되기를 바라는 양측은 신화 쓰기에 바쁘다. 국정 농단을 두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이는 공통의 신화를 가지면 협력이 가능하고 자기들의 뜻을 관철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집단이 함께 만드는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 국가가 법치를 하자고 약속을 했으면 법이 내리는 결정을 수용하면 된다. 하지만 집단적 상상력이 만드는 실재가 ‘이것을 믿어라’하면 그대로 따른다. 신화는 믿으면 좋고 안 믿으면 그뿐이다.

 신화가 너무 날뛰는 사회는 품격이 없다.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무형의 사실을 강요하는 사회는 어리숙하다. 모든 사람은 개개인으로 존재하며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대로 좌우될 수는 없다. 개인주의를 내치는 사회를 뒤집어보면 집단을 만들어 광기 어린 구석으로 모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북한 평양 만수대에 있는 김일성ㆍ김정일 동상은 보면 섬뜩하다. 높이 20m 동상에 처음에는 금 37㎏을 입혀 개인숭배를 내모는 황금 우상탑이다. 지금은 금을 벗겨냈지만 그래도 불그스레한 빛이 도는 동상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지도 모른다. 소련이 1991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로 해체되면서 레닌 동상을 끌어내리는 분노한 시민들을 보았다. 신화에 매인 헛된 꿈을 깨기는 어려워도 깨고 나면 그 속에 허망한 이야기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고 깨닫는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티셔츠를 입고 집단의 힘을 보인 붉은 악마는 그 마력이 하늘을 찔렀다. 서울 광화문뿐 아니라 전국 주요 장소에서 벌인 응원전에서 붉은색의 마술이 펼쳐졌다. 한국 대표팀이 4강까지 가는 신화를 이뤄 붉은 악마는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그 당시 한국 사람이 펼친 붉은 악마의 응원을 세계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전국에서 동시에 같은 옷을 입고 응원을 펼칠 수 있는지, 세계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쉽게 집단으로 뭉쳐 새로운 신화를 쓰는 사회는 위험하다. 북한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 앞에서 눈물 흘리며 부르짖는 장면을 보면 털끝이 쭈뼛해진다. 신화가 쉽게 생활 가운데 열리는 사회에서는 끔찍한 일이 잘 일어난다. 환히 밝은 낮에 외국 공항에서 김정남을 독살되는 일은 신화를 신봉하는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신화를 걷어낼 참된 힘이 약하다. 촛불과 태극기가 도심에서 춤을 추고 집단 지성이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 한쪽으로 줄을 서게 한다. 여기에 언론과 방송은 한쪽으로 골을 파 더 큰 신화를 만든다. 신화에서 깨어나기에는 힘이 부친다. 언론이 벌이는 현란한 의제 설정은 침묵하는 많은 대중을 한쪽으로 내몰고 있다. 가관이다.

 정치적 이슈를 두고 여러 생각이 상충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신화를 덧씌워 한쪽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의도로 판을 뒤집으려 하고 또 그렇게 되는 게 순리일 수 있다. 가공한 이야기를 잘 믿는 순진한 대중을 꾀어 엄청난 사실을 만드는 이 신화 같은 세상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 주말에도 서울 중심에서 촛불과 태극기가 만드는 신화를 봐야 하는 게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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