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포켓몬과 소녀상
일본 포켓몬과 소녀상
  • 김혜란
  • 승인 2017.02.08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포켓에 잡히는 것은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들인 것 같다. 멀쩡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는 이리저리 방황한다. 길을 걷는 행인이 목적지도 없이 걷고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으면 백발백중 그 게임 중이다. 생전에 찾지 않던 조선의 궁궐들 여러 곳 방문해서는 입장객 수입을 늘리기도 하고, 소풍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은 유엔평화공원 담벼락을 한밤중에 뛰어넘기도 한다. 운동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걷고 뛰게 만든다. 덕분에 산책하게 됐다고 참 좋은 놀이라지만, 걸으면서 잡느라 앞도 잘 못 보고 사고 위험성도 높다. 심지어 운전 중에 몬스터를 잡다가 사고를 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늦게 도착한 일본발 증강현실게임이 게임 매니아들을 넘어 일반인들까지도 괴물잡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화면 속 배경은 분명히 현실인데, 거기서 귀엽게 혹은 얄밉게 째려보고 있는 아이들은 가상이고 애니메이션에서도 만난 아이들이다. 신기하고 재미나다.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않고 만사 잊고 집중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상 속 또 다른 세상에서 놀 수 있다. 일부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몬스터를 잡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유혹당해 포켓에 잡혀 버렸다.

 SNS상에도 그것을 잡는 사진과 방법, 성지와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생전 게임이라고는 하지 않던 점잖은(?) 양반들도 페친들과 경험을 주고받는다. 언론에도 연일 화제인 최순실 관련 뉴스 사이에 얼굴을 내민다. 급기야 놀라운 화면을 보고 말았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할머니 소녀상 설치에 반발, 일본으로 돌아가 한 달째 돌아오지 않는 주한 일본 대사이야기를 보도하는 영상 아래로 고궁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의 자막 뉴스가 깔린다. 곧이어서는 포켓몬고 게임에 열광하는 영상에, 소녀상 관련 아베 총리의 강경 대응과 우리 정부의 반응이 자막 뉴스로 흐른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속에서 편하지 않은 관계다. 한반도에서 일찍이 섬나라 일본에 글자와 문화를 전해줬다고 하지만, 우리가 직간접으로 겪은 역사 속에는 일본에 침략당하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밀렸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본 강점기에 그들이 한반도의 곳곳에서 전방위로 저지른 만행에서 아직도 제대로 해방(?)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중 가장 와 닿는 일이 독도 영유권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강제 징집에 관한 사죄와 배상 문제일 것이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지금 당장 관련 국제 재판을 벌인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총론이다. 해마다 두어 번씩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며 우리 속을 뒤집어 놓았는데, 그런 일들이 재판을 벌이면 일본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땅이 당연해서 그냥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알리는 목소리도 일본만큼 크고 절실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소녀상도 그렇다. 한국정부가 석연찮게(?) 합의를 해버리면서 사단이 났다. 아베 수상은 합의결과로 당연히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한국의 합의에 대해 “정권이 바뀐다 해도 실행하는 것이 국가 신용의 문제다”라고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못 박았다. 돈도 필요 없고 사죄하라는 할머니들의 요구는 아직도 공허하게 맴돌고 있다.

 포켓몬고 게임을 하는 지인들 대부분은 소녀상 철거에 대해 이를 악문다. 당연히 독도관련 일본의 말도 되지 않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광분한다. 그런데 일본발 포켓몬고 게임도 몰입해서 즐긴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연 이것은 이것이고 그것은 그것인가.

 어른들의 걱정을 듣고 자랐다. ‘한민족은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빠져든다’고. 지금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은 너무 쉽게 잊고, 달고 재미난 게임에 유난히 쉽게 빠지는 우리 모습이다. 그것이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 제대로 즐길 수 있어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게임을 즐기는 일이, 우리 민족을 이다지도 모욕 주는 일본 기업을 융성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떠올리고 생각한 후에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세계 경제 질서 속에 대놓고 말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국민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아직도 ‘알아서 잘’ 못 하고 있다. ‘수구꼴통’이라 비웃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